드디어 나는 위래국민학교 입학을하였다 산을 두개나넘어야 했으나 기뻣다 동생들때문에 9살에 1학년이지만 책보에 책이랑 공책을싸서 어께에둘러메고 달리다시피하여 학교에다녔다
끝나고올때면 아이들은 놀며 놀이도하고 시나브로 오지만 나는해시계때문에 놀수가없었다
몆시에 끝나면 집도착몆시고 숙제한뒤 아이데리고 어머니한테가야했다 아니면 회초리가
기다리기때문에 친구들과 놀고싶어도 그냥달려야한다 가끔 건빵과 옥수수빵을 학교에서
주기도하였는데 나는거의 안먹고 집으로가저왔다 가족이 나누어 먹고싶어서이다
한번은 우리밭북에 땅벌이 집을지어서 농사짖는데 아주걸리적거렸다 가끔 쏘이기도하고
지나가던 동내사람들도 골치아파하였다 나는 하루날을잡았다 비료푸대로 옷을만들고
얼굴등을 가리고 요즈음 아이들 놀리하는 흙이있다 진흙인지 찰흙인지 를 크게뭉치어서
벌이드나드는 구멍가까이가서 틀어막았다 그리고 죽자사자뛰었다 그러나 땅벌은 더빨랐다
까막게 나를따라왔다 가끔쏘기도하고 나는 논둑에 업드렸다 그러나 엄청쏘기때문에
다시일어나 뒤었다 격국 개울로가서 물속에서 잠수하였다 그래도 지독한 벌들은 위에서 떠나질안았다 덕분에 얼마나쏘였던지 특별한약도없는때라 온몸에 된장을 더덕더덕붙였다 정말 죽는줄알았다 3~4일은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그러나 땅벌은 나중에가보니 옆에다가 구녕을다시뚤어서 살고있었다 공연히 나만고생하였다 ㅠㅠㅠ
소풍을가는데 어머니는 해줄건없고 개떡을싸주셨다 개떡이란 밀가루반죽을하여 호박입 콩입 등으로 싸서 밥할때 위에다가 찌면된다 손바닥만하게 두개인가를 싸주셨다 다른아이들은 김밥도있고 음료도있었다 점심시간에 나는 한쪽에가서 개떡하나를 먹었다 하나는 못먹고집으로 가저왔다 공부는 그냥 보통이었다 집안일때문에 더못한지도몰랐다 어느날 누나가왔다
식모살이를 고만하고 공장에 취직을하러간다고하였다 집에서 몆일 쉬고는 다시떠낮다
편지가왔는데 경북 선산에 옷만드는공장에 다닌다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상하였다
알고보니 동생을가지신거였다 아버지는 아파누어게시고 어머니는 배가점점불러오고
힘겨운 생활이었다 그래도 세월은가서 남동생이 테어났다 4남1녀 가되었다
나는 학교에 가끔못갔다 참엉망이었다 생활하기가 그날도 여느때와갔이 피곤하여 잡을자고있는데 어머니가깨우겼다 아버지친구한테 아버지돌아가셨다고해라 나는허둥지둥 아버지친구분한테
말씀드렸다 다행이 동내분들이 도와주셔서 장례는치루었다 친척하나없이 아이들만 고만고만
돈도없고 두분이 일구신 밭조금 집도다되어가는집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이차이가있어
30중반이었다 나는 아버지 상여가나가는데 핏덩이 동생을업고 있었다 장남이니 아이주고 상여따라가라 하셨다 동내어르신들이 그러나 나는 울지도안고 따라가기도 실었다 그래서 아이를업고 산으로갔다 먼산에서 아버지상여나가느걸 보고있었다 지금생각해보아도 이해가안간다 그저 무서웠다 심지어 돌아가신뒤 혼자방에도 못있었다 밤에 혼자밖에도 못나갔다 왜그렇게 무서운지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하도 괴롭힘당해서인가 한편으로는 걱정이되었다 세내교육때문이엇을까? 이제는 힘들고 어려운일 일가친척이없으니 누구와 의놀할사람도없고 어머니는 내가바도
착하고 마음만좋으시지 답답하였다 공부를 못해서그런듯하다
몆일뒤 편지를쓰라해서 받아썻다 어머니오빠 그러니까 외갓집에 보낸편지였다 나는 받아쓰기만하여 보냈더니 몆일뒤 두분이오셨다 한분은 외삼촌 한분은 이모부 어머니 동생이있었다 그동안몰랐다 왕래가없으니 그리고 아버지가 완전보수적이라 우리는 꼼짝못하고 살앗기때문에 외갓집이있는지도 몰랐다 외삼촌 과 이모부 어머니 나 동생들 이렇게 의논을하였다 집은있으나 농토도없고 아이들은 다어리고 어머니도 30중반이고 살아갈일이 걱정이니 이곳을정리하고 같이가자는것이었다 외갓집가면 큰집도잇고 학교도 크고 좋으며 여기보다 도시라모든게 좋다며 가자고하셨다 누나는 아버지 돌아가셨는데도 못오고 나는그때 11살 멀알겠는가 결국 그곳을 정리했다
그리고 보따리몆개들고 열차를따고 외삼촌을 따라왔다 막내는 백일이나되었을까
새벽에떠나서 도착하니 어둑어둑 전북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였다 우리는 일단방하나에서
잠을자고 다은날보니 외갓집에는 외할머니 외숭모 사촌누나1 사촌형1 사촌남동생1 사촌여동생1
대행이 방은5개있었다 그중한방을쓰는데 참불편하였다 싸우기도하고 외갓집7식구 우리5식구
참북적거렸다 사투리가 어찌나심한지 툭하면 거시기 거의다가 거시기 로 통한다 매일싸우고 터지고 어머니도 속상하고 결국 동내 빈방에서 세를주고 방하나를빌려 이사를했다 좁은 방이지만 살것같앗다 나도 학교를옴겨 전학하였다 그런데 아는아이하나없고 말도안통하였다 충남 하고 전북 하고 나는 놀림감이되엇다 그런데 더골치아푼건 돈이없어 육성회비를 못낸다는것이다 나는 매일 앞에불려나가 손등 손바닥 등을 맞으며 하루 하루 를 견뎌야했다 공부도안되었다
그래서 하루는 학교를안가고 산으로갔다 곰곰히 생각을해보앗다 이렇게살수는없엇다
아버지한테 세내교육받은것도있고 이데로견디며 학교다닌들 얼마나버티겠는가
또 동생들도 학교다녀야하는데 똑같은 처지라면 지금나도 견디기힘드는데 동생들은 어떻게
견딘단말인가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자 결심을하였다 어머니한테 이야기을 못하고
아침마다 책보들고나와 산으로갔다 뾰죽한수가없었다 결국 어머니도아셨고 울며 불며 애원하셨다 왜안가냐고 공부를해야지 어쩔려고 그러냐 그러나 나도뾰죽한 방법이없어 대답도못하였다
그냥 일해서 돈번다고하였다 그라고는 그때만해도 나무를해다가 아궁이에 불을때서 살때라
나는 아이들이 가방메고 학교로갈때 나는 지개지고 산으로갔다 나무하러간것이다
아침먹고 나면 겨울에는 여자 남자 다같이 할일없는사람은 산에가서 나무들을하였다
그러다보니 가까운곳은나무가없고 접접멀리가야했다 천안에서는 낫을들고 나무를하였는데
이곳에오니 갈키를들고 큰소나무밑에서 솔잎을 글어모아 나무가지로싸서 남자들은 지개에지고 여자들은 머리에이고 오는것이었다 하루두번 아침먹고 점심먹고 그박에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일을배웠다 힘들고 손에는 물집이잡혀 터저서 쓰라렸지만 속은편햇다 무언가하고있다는 쁘듯함도있었다 어머니는 가끔 힘들지 긍게공부하랄때하지 먼사서고생이냐 하며 한숨을쉬시지만 한귀로듯고 한귀로 흘렷다 싸움도많이했다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 3학년1학기 중퇴 이걸로 공부는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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