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뉴스24 >
30일 서울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는 2010남아공월드컵 예비엔트리 30명의 명단 발표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허정무 감독의 입에서 "박지성"이라는 이름이 터져나왔다. 그렇지만 행사장에 있던 취재진, 관계자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조원희, 황재원, 김치우, 염기훈 등의 이름이 호명될 때 감탄사나 술렁거림이 나오며 더욱 많은 이목이 쏠렸다.
30명의 명단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열린 허정무 감독의 기자회견. 취재진은 대표팀의 핵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해 그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허정무 감독 역시 기자회견 중 박지성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박지성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이유. 그의 대표팀 발탁은 더 이상 이슈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비엔트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지성에 대해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궁금해하거나 의문을 제기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박지성의 경쟁력도, 박지성의 역할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한국축구에서 박지성은 '당연함'이다. 박지성이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으로 향하는 것은 기정사실과 같다. 그가 없는 월드컵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박지성은 당연히 월드컵에 출전해야만 하고, 당연히 대표팀의 중심이 돼 좋은 활약을 펼쳐야만 한다.
2002년 막내로 월드컵에 참가해 일을 낸 박지성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한국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이제 많은 후배를 거느리는 고참이 된 박지성. 2010년에 박지성은 더욱 진화한 모습으로 또 한 번 월드컵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허정무호가 출범한 2008년. 이후 2년3개월 동안 허정무호가 성장하면서 스쿼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속 리그에서의 부진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대표팀 낙마를 겪은 선수들이 있었고, 태극마크를 달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인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30명의 예비엔트리가 선정됐다.
박지성은 예외였다. 소속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도, 간혹 침체를 겪어도,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예전보다 조금 못미쳐도 박지성은 항상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부상과 컨디션 회복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잠시 제외된 적은 있지만 박지성은 예비엔트리에 든 30명 중 거의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는 공고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허정무호에서 시들지 않는 박지성의 존재감은 꼭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2002년 4강 신화의 멤버, 2006년 한국대표팀의 에이스, 두 번의 월드컵 경험, 세계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 유럽리그의 경험 등 박지성을 수식하는 이력은 화려하다. 하지만 박지성이 허정무호에서 공고한 위치를 다진 것은 태극마크를 달고 스스로 보여준 활약 때문이다. 대표팀 경기를 통해 박지성은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강렬함을 남겼다.
2008년 2월6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조별리그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허정무호의 부름을 받고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명불허전이었다. 박지성은 연신 매서운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지배했다. 후반 25분 한국의 세 번째 골을 작렬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박지성은 허정무호에서도 강렬한 모습으로 첫 등장을 알렸다.
2008년 9월10일 북한과의 최종예선 1차전에서 1-1 무승부 후 허정무호는 위기에 빠졌다.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이후 허정무호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주장 교체다. 허정무호의 주장 '완장'은 김남일에서 박지성의 팔로 옮겨갔다. 이후 허정무호는 승승장구했다. 박지성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선두들을 하나로 묶었고 허정무호를 쾌속질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 진출의 최대 승부처였던 2009년 2월11일 이란과의 최종예선. 한국은 패색이 짙었다. 0-1로 지고 있던 후반 36분. 박지성이 허정무호를 살려내는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2009년 6월17일 월드컵 예선의 피날레 이란전에서도 박지성은 환상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켜 팬들을 열광시켰다.
허정무호의 주장으로서, 핵심 플레이어로서, 또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박지성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박지성의 이름값이 아니라 박지성이 가진 경쟁력이 오늘의 위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박지성은 한국축구에 있어 공기와 같다. 그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2010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박지성이 있어 숨을 쉴 수 있다.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박영태기자 ds3fa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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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는 2010남아공월드컵 예비엔트리 30명의 명단 발표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허정무 감독의 입에서 "박지성"이라는 이름이 터져나왔다. 그렇지만 행사장에 있던 취재진, 관계자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조원희, 황재원, 김치우, 염기훈 등의 이름이 호명될 때 감탄사나 술렁거림이 나오며 더욱 많은 이목이 쏠렸다.
박지성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이유. 그의 대표팀 발탁은 더 이상 이슈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비엔트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지성에 대해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궁금해하거나 의문을 제기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박지성의 경쟁력도, 박지성의 역할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한국축구에서 박지성은 '당연함'이다. 박지성이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으로 향하는 것은 기정사실과 같다. 그가 없는 월드컵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박지성은 당연히 월드컵에 출전해야만 하고, 당연히 대표팀의 중심이 돼 좋은 활약을 펼쳐야만 한다.
2002년 막내로 월드컵에 참가해 일을 낸 박지성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한국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이제 많은 후배를 거느리는 고참이 된 박지성. 2010년에 박지성은 더욱 진화한 모습으로 또 한 번 월드컵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허정무호가 출범한 2008년. 이후 2년3개월 동안 허정무호가 성장하면서 스쿼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속 리그에서의 부진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대표팀 낙마를 겪은 선수들이 있었고, 태극마크를 달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인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30명의 예비엔트리가 선정됐다.
박지성은 예외였다. 소속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도, 간혹 침체를 겪어도,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예전보다 조금 못미쳐도 박지성은 항상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부상과 컨디션 회복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잠시 제외된 적은 있지만 박지성은 예비엔트리에 든 30명 중 거의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는 공고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허정무호에서 시들지 않는 박지성의 존재감은 꼭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2002년 4강 신화의 멤버, 2006년 한국대표팀의 에이스, 두 번의 월드컵 경험, 세계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 유럽리그의 경험 등 박지성을 수식하는 이력은 화려하다. 하지만 박지성이 허정무호에서 공고한 위치를 다진 것은 태극마크를 달고 스스로 보여준 활약 때문이다. 대표팀 경기를 통해 박지성은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강렬함을 남겼다.
2008년 2월6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조별리그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허정무호의 부름을 받고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명불허전이었다. 박지성은 연신 매서운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지배했다. 후반 25분 한국의 세 번째 골을 작렬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박지성은 허정무호에서도 강렬한 모습으로 첫 등장을 알렸다.
2008년 9월10일 북한과의 최종예선 1차전에서 1-1 무승부 후 허정무호는 위기에 빠졌다.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이후 허정무호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주장 교체다. 허정무호의 주장 '완장'은 김남일에서 박지성의 팔로 옮겨갔다. 이후 허정무호는 승승장구했다. 박지성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선두들을 하나로 묶었고 허정무호를 쾌속질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 진출의 최대 승부처였던 2009년 2월11일 이란과의 최종예선. 한국은 패색이 짙었다. 0-1로 지고 있던 후반 36분. 박지성이 허정무호를 살려내는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2009년 6월17일 월드컵 예선의 피날레 이란전에서도 박지성은 환상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켜 팬들을 열광시켰다.
허정무호의 주장으로서, 핵심 플레이어로서, 또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박지성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박지성의 이름값이 아니라 박지성이 가진 경쟁력이 오늘의 위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박지성은 한국축구에 있어 공기와 같다. 그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2010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박지성이 있어 숨을 쉴 수 있다.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박영태기자 ds3fa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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