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설리 전 외국계기업 직원
"하루 30Km걸으며 재취업 의지 불살라"
하루종일 불안감과 추위에 시달린 그녀는 곧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침낭의 감촉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는 최씨는 "구직의 고통은 사랑보다 더 지독한 열병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대장정 길에 목도한 전국의 산하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열정을 불태울 에너지를 얻고 싶다고…
지난 1월 초 강원도 문막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백년만의 폭설이라고 했다.
24박 25일의 강행군이었고, 최설리(30·여) 씨는 사흘째 되는 날 대열에 합류했다. 10Kg 무게의 군장을 하고 하루 30Km 가까이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처음 며칠간이 고비였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남자들도 다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흘이상 씻지 못 할 때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사서 고생을 한다고 했다. 행군이 거듭될수록 머리는 맑아졌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풍광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 덮인 산야는 아름다웠으나, 산허리를 휘감고 몰아치는 바람은 매서웠다. 그녀의 삶이 꼭 그랬다.
늘 바람 잘 날이 없던 그녀는 작년 말 다시 백수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한 유럽계 컨설팅 기업의 한국 사무소는 오랜만에 구한 정규직 일자리였다. 마케팅 지원이 그녀의 주요 업무였다.
모기업이 있는 영국의 경기 침체가 위기의 발단이었다. 유럽의 경기침체는 빠른 속도로 EU(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로 퍼져 나갔고, 이 글로벌 컨설팅 기업은 위기의 직격탄을 정면으로 맞았다. 대학 졸업후 모처럼 구한 괜찮은 일자리는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난 2003년 항공대를 졸업한 그녀의 첫 직장은 고향인 부산에 있는 작은 무역 회사였다. 인도,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 수출 업무를 염두에 두고 있던 최 씨에게 돌아온 업무는 사무실 잡무를 챙기는 허드레 일이었다.
최 씨가 구한 두 번째 일자리는 한 국내기업의 인도네시아 시장공략 업무였다.
6개월짜리 인턴사원으로 현지에 파견된 그녀는 이 회사의 전략상품인 강장제의 현지시장 판매를 보조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최 씨는 이번에는 삼성전자의 인도 현지법인 통역업무를 담당했다.
이번에도 6개월 단기 업무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최씨는 인턴 경험을 살려 국내의 한 휴대폰 아웃소싱 업체에 취업을 했다.
노키아나 모토롤라를 비롯한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의 자격요건에 맞는 부품사를 발탁해 연결시켜주는 일이 그녀의 주요 업무였다.
최 씨가 국토대장정에 나서기로 결심한 때는 지난해 말이었다. 국내의 한 경제 단체가 때마침 사회공헌 분야 업무를 담당할 경력직을 모집했다.
유럽계 컨설팅 회사에서 사회 공헌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그녀는 지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경쟁자들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쟁률은 수백대 일에 달했으며, 석박사급 지원자들의 이력도 화려했다. 그녀는 지난 1월 말 한 달 가까이 진행된 국토 대장정 코스를 무사히 마쳤다.
또 다른 사회공헌 컨설팅 기관에 이력서를 제출한 최씨는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월4일 그녀는 강원도 문막에 있는 한 초등학교 운동장 텐트에 누워 있었다. 폭설이 전국을 뒤덮어 대중교통이 마비되고 빙판길 사고가 속출하던 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 이었던 셈이다.
하루 종일 불안감과 추위에 시달린 그녀는 곧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침낭의 감촉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는 최씨는 "구직의 고통은 사랑보다 더 지독한 열병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대장정 길에 목도한 전국의 산하에서 열정을 불태울 에너지를 얻고 싶다고…
김영경 청년유니온 대표
썬탠 아르바이트 하던 억척녀 '노조 청년유니온' 만들어
김영경 대표는 청년유니온 온라인 사이트가 주요 매체들에 잇달아 소개되며 신규 가입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공공근로 지원 규모가 대폭 줄어든 데다, 경제상황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 위기감을 느낀데 따른 것 같다고…
"여자들도 평균 3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하는데, 결혼이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김영경(29·여) 청년 유니온(Youth Comm-unity Union)대표는 거리낌이 없다.
생기발랄한 20대 여성, 운동가의 면모를 동시에 갖춘 그녀는 일본 드라마 마니아이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드라마는 < 파견의 품격 > 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일본 '프리터 족'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이다.
김 대표는 이 드라마를 시청할 때면 늘 군색하던 대학 시절의 고초를 떠올린다.
20대 초반 젊은 여대생의 등에는 늘 '햇볕에 그을린' 자욱이 남아 있었다. 10년 전이다. 한 화장품 회사의 썬 크림 신상품 실험에 참여한 그녀는 당시의 우스꽝스러운 실험복을 기억한다.
등이 환히 패인 실험복을 입고 농도가 다른 선크림을 바른 채 강력한 빛에 3시간 동안 누워있는 단순한 업무였다. 김 대표는 3개월 단위로 이 회사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일당 5만원 짜리 실험녀였다. 김 대표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의 추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김 대표는 대학시절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대형마트 판매직, 보안 업무. 식당, 횟집, 고기집 서빙, 화장품 실험, 전화 리서치 등이 그것이다.
한 유명 소설가의 말마따나 '밥벌이의 지겨움'을 뼛속깊이 체감했다. 김 대표는 지금도 파트 타이머들에게 재고 정리 업무를 맡기던 할인마트의 남자직원을 떠올린다.
그는 늘 가곡 '선구자'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부당함에 항의하는 그녀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서울 시내 중위권 대학을 나온 그녀의 삶은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군색한 처지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재학시절 월 40만원의 보수에 혹해 우연히 발을 들려놓게 된 학원 강사가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김 대표는 요즘 경기 한파의 위력을 절감한다.
자녀들 학원만큼은 웬만해서는 끊는 법이 없던 학부형들도 요즘은 달라졌다는 것이 그녀의 전언이다.
주요 업무 중의 하나가 학생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호소하는 일이다. 건설 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밥벌이의 고통을 일찌감치 절감했다.
그녀가 직접 청년유니언 결성에 나선 이면에는 자신의 쓰라린 경험이 있다. 현재 40여명의 발기인이 모인 청년유니온에는 15~39살 청년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구직자도 가입 대상이다. 대구에서 상경해 10년째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김 대표는 최근 < 여배우들 > 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여배우들의 대사가 요즘처럼 와닿는 때도 없다고. 김 대표는 청년유니온 온라인 사이트가 주요 매체들에 잇달아 소개되며 신규 가입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공공근로 지원 규모가 대폭 줄어든 데다, 경제상황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 위기감을 느낀데 따른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분석이다.
윤상원 대학신문 편집장
1학년부터 토익공부 신입생들 "경쟁사 제품 모방한 공산품같아"
그는 이러한 추세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평생 해도 행복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후배들이 당장 일자리를 찾는데 급급하다는 것.
경쟁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비교 우위를 빠른 속도로 흡수하면서 종래에는 서로 엇비슷해지는 '코모더티(commodity·공산품)'의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윤상원(22) 씨는 눈매가 날카롭다. 서울시내 소재 대학의 신문사 편집장으로 근무하는 그는 요즘 세월의 변화를 실감한다.
혹독하기로 소문난 이 신문사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수습에게 냉면 사발로 술을 먹이고, 군기를 잡는 풍경은 고릿적 옛날 얘기다.
대부분 여대생들인 이 대학신문사 기자들은 입학 때부터 토익 등 문제풀이에 몰두한다. 학내의 다른 클럽들에 가입하지 말라는 경고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다.
술자리에서 군기를 잡는다고 고함을 지르거나, 나태해진 생활 태도를 빌미로 기합을 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학생 기자들도 초년병 시절부터 다들 '스펙 업'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김 편집장은 대학생 기자들에게 한 사회의 여론을 주도해 나가던 지난 1980년대의 학생 기자를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윤 편집장의 여자 후배는 최근 해병대 캠프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 대학 여대생 커리어센터의 필수 코스이다. 윤 씨의 또 다른 대학 후배는 최근 핀란드를 다녀왔다.
이 후배는 친구들과 팀을 꾸려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노키아로 잘 알려진 이 나라의 환경 경영 실태를 분석하고 돌아와 보고서를 제출했다. 견문도 넓히고 봉사활동 이력도 한줄 더하는 양수겸장의 묘수이다.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격'이다. 요즘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을 위한 '자격요건 갖추기'이다.
공모전, 취업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업데이트 하는 '스펙업(spec-up)'이라는 커뮤니티가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다. '미래를 여는 지혜'라는 카페도 요즘 상종가이다.
학생들이 팀을 꾸려 취업 정보도 교환하고, 영어공부도 한다. 통역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4학년이 취업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강의하고, 방송국 입사에 뜻이 있는 신문방송학과 학생은 이 장면을 캠코더에 담는 식이다.
봉사활동도 취업의 필수 요소이다. 윤 씨는 주요 기업들이 학생들의 국내 봉사활동 경력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덧붙인다.
윤 씨가 다니는 대학의 최고 인기 클럽도 바로 대학 측이 운영하는 봉사활동 조직이다. 해외 봉사 활동 중심의 '108리더스'라는 조직이 바로 그것이다.
윤 씨는 주로 이 대학 3, 4학년 학생들이 활동하는데, 학교 측의 취업추천서를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고 조언한다.
'동감'이라는 이름의 학교 홍보 도우미 클럽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해외 유명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오는 대학생들도 부쩍 증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이러한 추세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평생 해도 행복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후배들이 당장 일자리를 찾는데 급급하다는 것.
경쟁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비교 우위를 빠른 속도로 흡수하면서 종래에는 서로 엇비슷해지는 '코모더티(Commodity, 상품)'의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다들 열심히는 하는데, 자신만의 스토리가 없는 게 안타깝다는 게 윤씨의 진단이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관심이 많다.
한국인 사무총장이 등장하면서 유엔근무를 희망하는 학생들도 부쩍 늘어났으며, 자신도 꼭 유엔에서 근무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가수 장기하
"청년실업이 인디밴드 득세 불러"
경제위기는 독특한 스타일의 청년 문화를 잉태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은 지난 1990년 버블붕괴에 따른 경제 위기로 일본에서 종신직장이 사라지고, 동기를 알 수 없는 비인간적인 범죄들이 횡횡하던 때의 비망록이다. 가수 장기하는 청년세대의 실업이 골칫거리인 한국판 에반게리온 세대의 아이콘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친숙한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귀에 착착 감긴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값싼 공산품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공을 들여 만든 '공예품'을 떠올리게 한다.
좌우로 줄지어선 여성 백댄서들의 독특한 몸짓은 이 '문화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이다. 가수 장기하는 한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암울한 청년실업시대의 아이콘이다.
인디음반 초유의 정규앨범 4만 장 판매,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 네이버 주관 네티즌이 뽑은 2008년의 남자 아티스트에 선정된 그는 '인디계의 서태지', '인디계의 워낭소리' 등으로 불린다.
그런 이들이 재차 선을 보인 앨범이 바로 '청년실업 1집-기상시간은 정해져있다'이다. 13곡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앨범이다.
지난 2005년 프로젝트 앨범으로 첫발매된 이 음반은 가수 장기하의 인기를 등에 업고 2008년 12월 22일 출시됐다.
경제 위기가 초판 500장 정도가 팔린 뒤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진 앨범을 되살려낸 셈이다. 첫 기획 시점은 신용카드 버블 붕괴의 여파로 청년실업이 다시 사회불안의 뇌관으로 주목받던 때이다.
대한민국호의 빈부 격차는 물론 양극화의 골 또한 깊어가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부동산 버블의 파열음이 점차 커지며 일부 헤지펀드 운용자들이 유동화 채권의 보험상품격인 CDS 구입을 저울질하고 있던 시기다.
당시 이러한 정서를 배경으로 재등장한 앨범이 바로 청년실업 1집이다. 경제는 문화를 규정한다는 상하부구조론은 종종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 앨범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월가의 투자은행을 무너뜨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대량 실업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지난 2008년 재차 선을 보였다.
< 이 세상은 지옥이다 > 를 비롯한 앨범에 실린 주요 곡들은 인디밴드의 현실비판의 서사시인 셈이다. 청년세대들이 그의 등장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경제위기는 독특한 스타일의 청년 문화를 잉태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은 지난 90년 버블붕괴에 따른 경제 위기로 일본에서 종신직장이 사라지고, 동기를 알 수 없는 비인간적인 범죄들이 횡횡하던 때의 비망록이다. 가수 장기하는 청년세대의 실업이 골칫거리인 한국판 에반게리온 세대의 아이콘이다.
빨리 취업해서 성공할수도있다 = http://cafe.daum.net/re1004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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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Km걸으며 재취업 의지 불살라"
하루종일 불안감과 추위에 시달린 그녀는 곧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침낭의 감촉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는 최씨는 "구직의 고통은 사랑보다 더 지독한 열병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대장정 길에 목도한 전국의 산하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열정을 불태울 에너지를 얻고 싶다고…
지난 1월 초 강원도 문막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백년만의 폭설이라고 했다.
처음 며칠간이 고비였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남자들도 다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흘이상 씻지 못 할 때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사서 고생을 한다고 했다. 행군이 거듭될수록 머리는 맑아졌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풍광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 덮인 산야는 아름다웠으나, 산허리를 휘감고 몰아치는 바람은 매서웠다. 그녀의 삶이 꼭 그랬다.
늘 바람 잘 날이 없던 그녀는 작년 말 다시 백수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한 유럽계 컨설팅 기업의 한국 사무소는 오랜만에 구한 정규직 일자리였다. 마케팅 지원이 그녀의 주요 업무였다.
모기업이 있는 영국의 경기 침체가 위기의 발단이었다. 유럽의 경기침체는 빠른 속도로 EU(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로 퍼져 나갔고, 이 글로벌 컨설팅 기업은 위기의 직격탄을 정면으로 맞았다. 대학 졸업후 모처럼 구한 괜찮은 일자리는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난 2003년 항공대를 졸업한 그녀의 첫 직장은 고향인 부산에 있는 작은 무역 회사였다. 인도,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 수출 업무를 염두에 두고 있던 최 씨에게 돌아온 업무는 사무실 잡무를 챙기는 허드레 일이었다.
최 씨가 구한 두 번째 일자리는 한 국내기업의 인도네시아 시장공략 업무였다.
6개월짜리 인턴사원으로 현지에 파견된 그녀는 이 회사의 전략상품인 강장제의 현지시장 판매를 보조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최 씨는 이번에는 삼성전자의 인도 현지법인 통역업무를 담당했다.
이번에도 6개월 단기 업무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최씨는 인턴 경험을 살려 국내의 한 휴대폰 아웃소싱 업체에 취업을 했다.
노키아나 모토롤라를 비롯한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의 자격요건에 맞는 부품사를 발탁해 연결시켜주는 일이 그녀의 주요 업무였다.
최 씨가 국토대장정에 나서기로 결심한 때는 지난해 말이었다. 국내의 한 경제 단체가 때마침 사회공헌 분야 업무를 담당할 경력직을 모집했다.
유럽계 컨설팅 회사에서 사회 공헌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그녀는 지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경쟁자들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쟁률은 수백대 일에 달했으며, 석박사급 지원자들의 이력도 화려했다. 그녀는 지난 1월 말 한 달 가까이 진행된 국토 대장정 코스를 무사히 마쳤다.
또 다른 사회공헌 컨설팅 기관에 이력서를 제출한 최씨는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월4일 그녀는 강원도 문막에 있는 한 초등학교 운동장 텐트에 누워 있었다. 폭설이 전국을 뒤덮어 대중교통이 마비되고 빙판길 사고가 속출하던 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 이었던 셈이다.
하루 종일 불안감과 추위에 시달린 그녀는 곧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침낭의 감촉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는 최씨는 "구직의 고통은 사랑보다 더 지독한 열병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대장정 길에 목도한 전국의 산하에서 열정을 불태울 에너지를 얻고 싶다고…
김영경 청년유니온 대표
썬탠 아르바이트 하던 억척녀 '노조 청년유니온' 만들어
공공근로 지원 규모가 대폭 줄어든 데다, 경제상황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 위기감을 느낀데 따른 것 같다고…
"여자들도 평균 3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하는데, 결혼이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김영경(29·여) 청년 유니온(Youth Comm-unity Union)대표는 거리낌이 없다.
생기발랄한 20대 여성, 운동가의 면모를 동시에 갖춘 그녀는 일본 드라마 마니아이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드라마는 < 파견의 품격 > 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일본 '프리터 족'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이다.
김 대표는 이 드라마를 시청할 때면 늘 군색하던 대학 시절의 고초를 떠올린다.
20대 초반 젊은 여대생의 등에는 늘 '햇볕에 그을린' 자욱이 남아 있었다. 10년 전이다. 한 화장품 회사의 썬 크림 신상품 실험에 참여한 그녀는 당시의 우스꽝스러운 실험복을 기억한다.
등이 환히 패인 실험복을 입고 농도가 다른 선크림을 바른 채 강력한 빛에 3시간 동안 누워있는 단순한 업무였다. 김 대표는 3개월 단위로 이 회사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일당 5만원 짜리 실험녀였다. 김 대표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의 추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김 대표는 대학시절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대형마트 판매직, 보안 업무. 식당, 횟집, 고기집 서빙, 화장품 실험, 전화 리서치 등이 그것이다.
한 유명 소설가의 말마따나 '밥벌이의 지겨움'을 뼛속깊이 체감했다. 김 대표는 지금도 파트 타이머들에게 재고 정리 업무를 맡기던 할인마트의 남자직원을 떠올린다.
그는 늘 가곡 '선구자'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부당함에 항의하는 그녀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서울 시내 중위권 대학을 나온 그녀의 삶은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군색한 처지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재학시절 월 40만원의 보수에 혹해 우연히 발을 들려놓게 된 학원 강사가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김 대표는 요즘 경기 한파의 위력을 절감한다.
자녀들 학원만큼은 웬만해서는 끊는 법이 없던 학부형들도 요즘은 달라졌다는 것이 그녀의 전언이다.
주요 업무 중의 하나가 학생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호소하는 일이다. 건설 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밥벌이의 고통을 일찌감치 절감했다.
그녀가 직접 청년유니언 결성에 나선 이면에는 자신의 쓰라린 경험이 있다. 현재 40여명의 발기인이 모인 청년유니온에는 15~39살 청년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구직자도 가입 대상이다. 대구에서 상경해 10년째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김 대표는 최근 < 여배우들 > 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여배우들의 대사가 요즘처럼 와닿는 때도 없다고. 김 대표는 청년유니온 온라인 사이트가 주요 매체들에 잇달아 소개되며 신규 가입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공공근로 지원 규모가 대폭 줄어든 데다, 경제상황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 위기감을 느낀데 따른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분석이다.
윤상원 대학신문 편집장
1학년부터 토익공부 신입생들 "경쟁사 제품 모방한 공산품같아"
경쟁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비교 우위를 빠른 속도로 흡수하면서 종래에는 서로 엇비슷해지는 '코모더티(commodity·공산품)'의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윤상원(22) 씨는 눈매가 날카롭다. 서울시내 소재 대학의 신문사 편집장으로 근무하는 그는 요즘 세월의 변화를 실감한다.
혹독하기로 소문난 이 신문사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수습에게 냉면 사발로 술을 먹이고, 군기를 잡는 풍경은 고릿적 옛날 얘기다.
대부분 여대생들인 이 대학신문사 기자들은 입학 때부터 토익 등 문제풀이에 몰두한다. 학내의 다른 클럽들에 가입하지 말라는 경고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다.
술자리에서 군기를 잡는다고 고함을 지르거나, 나태해진 생활 태도를 빌미로 기합을 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학생 기자들도 초년병 시절부터 다들 '스펙 업'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김 편집장은 대학생 기자들에게 한 사회의 여론을 주도해 나가던 지난 1980년대의 학생 기자를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윤 편집장의 여자 후배는 최근 해병대 캠프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 대학 여대생 커리어센터의 필수 코스이다. 윤 씨의 또 다른 대학 후배는 최근 핀란드를 다녀왔다.
이 후배는 친구들과 팀을 꾸려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노키아로 잘 알려진 이 나라의 환경 경영 실태를 분석하고 돌아와 보고서를 제출했다. 견문도 넓히고 봉사활동 이력도 한줄 더하는 양수겸장의 묘수이다.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격'이다. 요즘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을 위한 '자격요건 갖추기'이다.
공모전, 취업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업데이트 하는 '스펙업(spec-up)'이라는 커뮤니티가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다. '미래를 여는 지혜'라는 카페도 요즘 상종가이다.
학생들이 팀을 꾸려 취업 정보도 교환하고, 영어공부도 한다. 통역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4학년이 취업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강의하고, 방송국 입사에 뜻이 있는 신문방송학과 학생은 이 장면을 캠코더에 담는 식이다.
봉사활동도 취업의 필수 요소이다. 윤 씨는 주요 기업들이 학생들의 국내 봉사활동 경력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덧붙인다.
윤 씨가 다니는 대학의 최고 인기 클럽도 바로 대학 측이 운영하는 봉사활동 조직이다. 해외 봉사 활동 중심의 '108리더스'라는 조직이 바로 그것이다.
윤 씨는 주로 이 대학 3, 4학년 학생들이 활동하는데, 학교 측의 취업추천서를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고 조언한다.
'동감'이라는 이름의 학교 홍보 도우미 클럽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해외 유명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오는 대학생들도 부쩍 증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이러한 추세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평생 해도 행복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후배들이 당장 일자리를 찾는데 급급하다는 것.
경쟁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비교 우위를 빠른 속도로 흡수하면서 종래에는 서로 엇비슷해지는 '코모더티(Commodity, 상품)'의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다들 열심히는 하는데, 자신만의 스토리가 없는 게 안타깝다는 게 윤씨의 진단이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관심이 많다.
한국인 사무총장이 등장하면서 유엔근무를 희망하는 학생들도 부쩍 늘어났으며, 자신도 꼭 유엔에서 근무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가수 장기하
"청년실업이 인디밴드 득세 불러"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친숙한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귀에 착착 감긴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값싼 공산품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공을 들여 만든 '공예품'을 떠올리게 한다.
좌우로 줄지어선 여성 백댄서들의 독특한 몸짓은 이 '문화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이다. 가수 장기하는 한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암울한 청년실업시대의 아이콘이다.
인디음반 초유의 정규앨범 4만 장 판매,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 네이버 주관 네티즌이 뽑은 2008년의 남자 아티스트에 선정된 그는 '인디계의 서태지', '인디계의 워낭소리' 등으로 불린다.
그런 이들이 재차 선을 보인 앨범이 바로 '청년실업 1집-기상시간은 정해져있다'이다. 13곡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앨범이다.
지난 2005년 프로젝트 앨범으로 첫발매된 이 음반은 가수 장기하의 인기를 등에 업고 2008년 12월 22일 출시됐다.
경제 위기가 초판 500장 정도가 팔린 뒤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진 앨범을 되살려낸 셈이다. 첫 기획 시점은 신용카드 버블 붕괴의 여파로 청년실업이 다시 사회불안의 뇌관으로 주목받던 때이다.
대한민국호의 빈부 격차는 물론 양극화의 골 또한 깊어가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부동산 버블의 파열음이 점차 커지며 일부 헤지펀드 운용자들이 유동화 채권의 보험상품격인 CDS 구입을 저울질하고 있던 시기다.
당시 이러한 정서를 배경으로 재등장한 앨범이 바로 청년실업 1집이다. 경제는 문화를 규정한다는 상하부구조론은 종종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 앨범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월가의 투자은행을 무너뜨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대량 실업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지난 2008년 재차 선을 보였다.
< 이 세상은 지옥이다 > 를 비롯한 앨범에 실린 주요 곡들은 인디밴드의 현실비판의 서사시인 셈이다. 청년세대들이 그의 등장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경제위기는 독특한 스타일의 청년 문화를 잉태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은 지난 90년 버블붕괴에 따른 경제 위기로 일본에서 종신직장이 사라지고, 동기를 알 수 없는 비인간적인 범죄들이 횡횡하던 때의 비망록이다. 가수 장기하는 청년세대의 실업이 골칫거리인 한국판 에반게리온 세대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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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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