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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배 둘레 햄’ 시술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미 있지만 달갑지 않은 통계 하나를 발표했다. 과체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무려 260만 명이라는 것이다. WHO는 "부자 나라들의 전유물이던 비만과 과체중이 중간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에까지 널리 퍼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WHO 기준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몸무게/키㎡)가 25 이상이면 과체중, 30 이상이면 비만, 35 이상이면 고도 비만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4차 국민건강 영양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성인 비만 유병률이 31.7%나 된다. 900여만 명의 어른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라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과체중이나 비만이 곧 '병약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질량지수가 35 이상이면 고지혈증, 고협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체질량지수가 35 이상인 10만3000여 명(보건복지부 2007년 자료)의 '특대 사이즈' 사람은 다르다. 살 뺄 궁리를 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 많은 연구에서 비만이 고지혈증·당뇨병·고혈압에 걸릴 위험을 2.1~2.9배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서울백병원 다이어트연구소 자료). 이미 다이어트 같은 특단의 방법으로 잉여 지방을 제거하느라 애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살이 쑥쑥 빠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익히 보아왔듯, 다이어트로 '배 둘레 햄'을 제거하는 일은 엄청난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목표에 접근조차 못하고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살과의 전쟁'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비만 관련 난치병 74~98% 완치


다행히 최근 살과의 전쟁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비만 수술이 계속 진화 중이다. 비만 수술은 위장관에 해부학적 변화를 일으켜 음식의 섭취·흡수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비만과 비만 관련 합병증을 치료한다(지방 흡입술과 복부 성형술은 속하지 않음). 루와이 위 우회술(베리아트릭 수술)과 랩 밴드 조절 수술, 담췌장 전환술이 대표적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이미 오래전에 체질량지수 40 이상이거나, 체질량지수 35~40에 비만 관련 합병증(당뇨병·고혈압·심장병·수면무호흡증 등)이 있는 사람들을 비만 수술 대상으로 규정해왔다. 1998년, 그 같은 기준으로 비만 수술을 받은 사람이 전 세계에서 4만 명이었다. 그러나 10년 뒤 그 건수는 무려 34만4000건으로 늘어났다. 800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가장 많이 수술한 나라는 미국으로 22만 건이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뚱뚱보를 병원 침대에 눕게 만들었을까. "간단한 수술과 뛰어나 효과 덕이다"라고 이상권 교수(서울성모병원?비만외과)는 말했다. 실제 루와이 위 우회술을 비롯한 비만 수술은 초과 체중을 상당량 빼줄 뿐 아니라, 비만 관련 합병증 예방과 치료에서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비만 수술을 받으면 당뇨병 83%, 대사증후군 80%, 수면무호흡증 74~98%, 역류성 식도염 72~98%, 지방간 90%를 치유·예방할 수 있다. "비만 수술군은 비수술군보다 사망 위험도도 89%쯤 낮다"라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비만 수술 가운데 최근 각광받는 방법은 랩 밴드 수술이다. 밴드로 위장의 상부를 조이고, 그 밴드에 식염수를 주입해 음식 섭취량을 줄인다.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덕에 수술 시간( 30~60분)이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초과 체중 감소율은 55~60%에 이른다. 권수인 박사(예다인외과 원장)는 지난 7년간 무려 800여 건의 랩 밴드 수술을 집도했다(2009년에만 290여 건). 그는 최근 자신이 수술한 환자 358명을 분석한 자료를 내놨다.

자료에 따르면, 수술 환자의 평균 나이는 28.8세(17~65세)였고, 남녀 수는 여성 324 대 남성 34명으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평균 수술시간은 32.7분이고, 수술 환자들의 입원 기간은 평균 0.85일이었다. 사망률은 0.05%로 루와이 위 우회술의 사망률(0.5%)보다 약 10배 낮았다(그러나 권 박사는 통계는 통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800사례를 시술했지만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수술 뒤 음식 섭취량은 600~800㎉가 줄었고, 그 덕에 체중이 엄청나게 줄었다. "3개월에 평균 17.5kg, 6개월에 평균 28.1kg. 1년에 평균 37.7kg이나 감소했다"라고 권 박사는 밝혔다.

랩 밴드 수술,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받아

물론 모든 수술이 그렇듯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꽤 큰 이물질이 365일 뱃속에 들어 있는데 마냥 편안할 수는 없을 터. 한 20대 수술 환자는 "불편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가끔 음식이 통과하는 느낌과 이물감을 느낄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라고 말했다. 더러 밴드가 미끄러져 빠지기도 한다. "그동안 150여 명의 환자에게서 그처럼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라고 권 박사는 말했다(랩 밴드는 필요치 않으면 제거할 수 있고, 다시 조정해 끼울 수도 있다). 식염수를 이용한 포만감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었을 때와는 영 다르다. 밴드를 얼마나 조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분 좋게 배부르지 않고 배 터지게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또 밴드를 너무 세게 조이면 (치명적이지 않지만) 다양한 합병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위 천공(穿孔), 위 역류, 구토, 식도 확장 등이 그것이다.





비만 수술을 받은 사람이 1998년 4만명에서 34만명으로 늘었다.

비싼 수술비도 약점으로 꼽힌다. 랩 밴드 가격을 포함해 1000만원 안팎이 들어간다. 전문가들과 고도 비만 환자들이 랩 밴드를 포함한 비만 수술이 의료보험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홍찬 교수(가톨릭대 성모병원?대사성질환수술센터)는 "고도 비만자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다. 그래서 좋은 줄 알고도 비만 수술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비만 수술에 대한 보험 급여 적용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 정양석 의원이 지난 1월에 '국민건강보험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 그 안에 따르면, 체질량지수가 35 이상이고, 두 가지 이상의 비만 관련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가 수술을 받으며 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만일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 1000만원 안팎 하는 수술비가 160만원 안팎으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랜 밴드 수술 외에 루와이 위 우회술도 꾸준히 시행되고 있다. 위의 일부를 잘라낸 뒤 음식물을 소장으로 바로 보내게 만드는데, 초과 체중 감소율이 60~70%나 되어 전 세계 비만 수술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랩 밴드 수술은 약 46%를 차지함). 협착, 출혈, 장폐색증, 폐렴, 빈혈 같은 합병증이 가끔 생기지만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다. 섭취한 음식을 소장의 80~90%를 거치지 않게 하는 '담췌장 전환술'은 체중 감량이 가장 확실하지만, 사망률(1%)이 높고 수술 과정이 복잡해 자주 시행되지는 않는다. 부작용도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오윤현 기자 /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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