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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자유글 올리는곳

아듀! 2009, 하루

취재 고제규·김은지·장일호 기자 / 김경민·김재욱·김수지·박초롱·허은선 인턴기자

2009년이 저문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4대강, 세종시 논란 등 숨 가빴던 한 해가 진다. 지난 1년 시사IN은 현장에 천착했다. 현장에서 만났던 24명의 하루를 다시 취재했다.
아듀! 2009. 이들에게 2009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0시 : 용찬 참사 유가족 권명숙, "2009년은 '불행'이다."

용산 참사로 남편 이성수씨를 잃은 권명숙씨는 찬 맥주를 들이켰다. 피붙이보다 더한 유족들과 이별연습을 치렀다. 권씨는 "다섯 가족은 형제 아닌 형제가 됐다. 어떻게 헤어져야 좋을지…"라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345일만에 서울시와 재개발조합, 유가족, 범국민대책위원회가 합의점을 찾았다. 언론은 극적 타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권씨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구속자 석방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지는 장례에 대해 "반쪽자리 장례식이다"라고 말했다.





철거민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45일 만인 12월30일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지난 1년 용산 참사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고 싸우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충연 위원장 등 구속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남았다.

권씨에게 2009년은 '불행'이다. 남편(故 이성수씨)은 1월20일 망루에 올라갔다 새까만 주검으로 되돌아왔다. 그날 이후 권씨에게 '내일'은 없었다. 권씨의 시간은 남편이 숨진 1월20일에 머물러 있다. 남편은 아직 냉동고에 누워있다. 이제 내년 1월9일이면 드디어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돌아갈 집이 없는 권명숙씨는 당분간 수원에 있는 친정에 머물 예정이다. 권씨의 새해 소망은 여전히 용산참사의 '해결'이다. 진상규명을 통해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권씨를 비롯한 용산 유족에게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1시 : 천정배·최문순·장세환 민주당 의원, "2009년은 '7월22일'이다."

세 의원은 미디어 법 재논의를 요구하며 의원직을 던졌다. '사퇴 3인방'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12월31일 새벽 1시 3인방은 국회 로텐더 홀이 아닌 국회 바깥에서 회동 중이었다. 본회의가 시작되면 농성장을 비켜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일단 점거농성을 풀었다. 2009 한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이들은 미디어법 재논의를 위해 머리를 싸맸다.

31일 새벽 1시 국회의 불은 밝았다. 예산안 처리로 부딪치고 있는 여·야당 의원이 각기 다른 곳에서 국회를 지키고 있었다. '배지'를 던진 3인방은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예결위장을 점거하지는 못하지만 원 외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7월22일을 잊지 못한다. 최문순 의원은 "언론 악법이 날치기 통과된 7월22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 '2009년의 그날'이다. 새해를 맞아 투쟁 방식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지를 두 분 의원님과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새해에도 이들의 싸움은 계속 된다.





미디어법과 4대강은 2010년에도 살아있는 쟁점이다. 미디어법 재논의를 요구하며 의원직을 던진 사퇴 3인방 장세환 천정배 최문순 의원(왼쪽부터)과 4대강 반대를 위해 풍찬노숙도 마다하지 않은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오른쪽)

2시 :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 "2009년은 '빵꾸똥꾸'이다."

160cm에 50kg이 안 되는 몸뚱이로 아스팔트 위에서 강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박용신 사무처장은 국회 앞에서 지난 14일부터 4대강 예산 통과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52kg이었던 몸무게가 48kg으로 줄었다. 면도를 하지 못해 코와 턱 밑 수염은 거뭇거뭇 했고 피부는 까칠했다. 딸아이가 무섭다고 할 정도로 수척해졌다. 박 처장은 자신의 몸뚱이보다 4대강 사업으로 상할 땅덩어리를 걱정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새벽 2시에도 그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박 사무처장은 "시민운동을 시작한 지 16년째인데 올해가 가장 힘든 한 해였다. 2009년은 '빵꾸똥꾸'이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도 못 하게 하고, 국회도 못 가게 하는 등의 탄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란다. '빵꾸똥꾸' 같았던 2009년을 보내고 그는 새해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한 소망을 밝혔다. 박 사무처장은 "2010년 지방선거 때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해주기를 바라고, 4대강 정비사업 위헌법률심판에 헌재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3시 : 44만원 세대 김경욱(가명), "2009년은 '졸업'이다."





ⓒ시사IN 장일호 잠을 빼앗긴 44만원 세대, 이들의 슬픈 초상이 < 시사IN > 116호에 실렸다.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6~7시까지 '밤일'을 하면서도 경욱이는 한 가지 원칙만은 꼭 지켜왔다. "절대 학교에 결석하지 않는다"는 것. 졸린 눈을 비벼가며 힘들게 다녔던 학교, 이제 곧 졸업이다.

경욱이는 고1때부터 3년간 택배 집하장에서 짐을 나누는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택배 아르바이트는 일급으로 4만 5천원을 지급해 준다. 일이 너무 힘들어 매일 할 수는 없다. 경욱이는 한 달 평균 일주일이나 열흘을 일한다.

새벽 3시. 경욱이가 한참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는 "연말이고 새해라서 요즘 물건이 많아 손이 달린다. 익숙해져서 별로 힘들지는 않다. 그래도 요즘은 방학이라 학교에 안 가니까 낮에는 집에서 편하게 잘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대학 새내기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다. 경욱이는 대학등록금을 보태기 위해 '잠'을 담보로 잡혔다. 경욱이는 "내년에 대학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 열심히 하고 싶다. 1학기 마치면 자원입대 할 생각인데, 군대도 건강이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라고 새해소망을 밝혔다.

4시 : 박부자 할머니

올해 들어 가장 기온이 낮다는 12월의 마지막 날 새벽 4시, 가락시장에 박부자 할머니는 없었다. "날씨도 춥고 요즘은 주울 시래기도 거의 없어 최근에는 안 나오시는 날이 많다"라고 주변 상인들은 말했다. 지난해 12월 가락시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을 안고 박 할머니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두른 목도리를 직접 건넸다. 그 뒤 박 할머니는 유명세를 치렀다.

이 대통령과 박 할머니 만남은 친서민 정책의 신호탄이었다. 1년 뒤 가락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이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1톤 트럭 뒤쪽에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고 있던 배추도매상 이아무개씨(57)는 "목도리 하나 준 것을 마치 모든 서민들의 추위를 해결해 준 것처럼 선전 할 생각마라"고 말했다. 가락시장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이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간 후에도 가락시장에 목도리 하나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깨끗한 시장을 만들라고 하니 시래기를 주워 파는 박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 할머니를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가락동 상인들의 새해 바람은 이구동성 한가지였다. "서민, 서민 하지 말고, 진짜 서민처지에 서민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

5시 : 고양이 사진가 김하연, "2009년은 '도전'이다."





ⓒ시사IN 한향란 김하연씨는 길 고양이 전문 사진가이다. 김씨가 찍은 사진이 < 시사IN > 93호 표지를 장식했다.

한겨레신문 서울 봉천지국장 김하연씨(40)는 매일 새벽 신문 배달을 나설 때마다 카메라를 챙긴다. 렌즈에 비둘기와 더불어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낙인 찍힌 길 고양이를 담는다. 한 장 두 장 찍은 사진이 모여 그는 올해 고양이 사진전을 열었고, 책도 냈다. 그는 아마추어 사진가를 넘어섰다. 방송에도 출연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국제 사진공모전 한국 예선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올해를 '도전'이라는 열쇳 말로 기억했다.

그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면서도 다양하다. 지금 돌보는 고양이들이 무사히 겨울을 나기를 바라고 고양이 생활 사진가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발간할 작정이다. 내년에도 사진전을 또 열고 싶은 소망도 있다. < 시사IN > 창간독자로서 지난 93호 표지 사진을 장식한 김하연씨는 < 시사IN > 에 '초심을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31일 새벽 5시, 그는 신문을 배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길가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두리번거렸다. 혹시 추위에 떨고 있을 길 고양이가 없는지.

6시 : 지율스님, "2009년은 '낙동강'이다."

길고 추운 밤 얼어붙은 낙동강이 녹으며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전, 지율 스님은 한겨울 추위를 견딜 만큼의 옷을 껴입고 카메라를 챙겨 낙동강 강변으로 향했다. 차가운 새벽 피어오르는 물안개 낀 '얼음강'을 찍기 위해서다.





용산참사 미사를 보는 문정현 신부(왼쪽)과 낙동강을 지키는 지율 스님(오른쪽)

한해가 저무는 31일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그저 낙동강을 묵묵히 지키는 것이 스님의 일상이다. 새해 첫 날 아침에도 낙동강에서 새해 맞이를 할 예정이다. 지율스님은 지난 3월부터 낙동강을 떠나지 않고 강변을 따라 걷고 있다. 스님은 "떠날 수 없는 입장이라 낙동강을 지키고 있다. 계속 곁에 있겠다"라고 말했다. 스님에게 '곁에 있다'는 것은 곧 '보듬고 치유한다'는 것과 같다. 스님이 낙동강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4대강 사업 추진으로 낙동강이 훼손되어 생태계가 고통을 겪는 것을 알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기 때문이다.

스님은 새해에도 강 주변을 걷고 낙동강을 '안을' 생각이다. 낙동강을 잘 모르는 사람들과 낙동강을 답사하는 계획이 새해 첫 달 7~8일에 잡혀있다. 이 외에도 몇 차례의 답사와 4대강 심포지엄 등 계획이 잡혀 있으나 스님의 낙동강 지키기에는 시효가 없다. 경북 상주 경천대 건너편 마을에 터를 잡고 '낙동강 지킴이'로 있는 지율 스님은 "생명의 땅이 생명을 잃지 않게 되는 순간까지 못 떠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꽁꽁 언 낙동강에 피어오른 새벽 물안개처럼 뿌옇기만 한 낙동강의 미래에 스님의 간절한 발원은 2010년에도 변함없다. "2009년에도 그랬듯 2010년에도 아픔의 땅에 내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잘 견뎌내고, 그 아픔들과 함께 치유되기를 발원한다."

7시 : 남일당 주임신부 문정현, "2009년은 '세상 읽기'이다."

'거리의 신부'로 세상의 못 볼꼴 다 봤다고 생각한 문 신부에게도 용산참사는 절망감을 안겨줬다. '전쟁터'였던 남일당은 문 신부가 들어온 이후 '남일당 성당'이 됐다. 그는 생명평화미사 마지막 날이 된 12월30일 미사에도 어김없이 참여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평화를 빕니다"라고 외쳤다. 노신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유족을 위로하고, 모인 이들을 감동시켰다.

용산에 머무는 문 신부가 가끔 만나는 세상 사람들은 '용산 문제 아직도 해결 안 됐습니까?'라고 묻곤 했다. 문 신부는 "이런 처참한 세상이 어디 있나 싶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참사를 목격하고도 외면했다"라고 말했다. 문 신부는 용산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뉴타운 사업이 얼마나 잘못 됐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침 7시. 보통 6시에 기상하는 문 신부의 아침기도가 끝나는 시간이다. 문 신부는 매일아침 재개발로 깨어질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재개발은 또 유유히 진행되겠지. 용산참사와 같은 일은 도처에서 벌어질 것이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없는 사람들이 쫓겨나는 걸 또 지켜봐야 할거야. 용산에서 내 역할은 끝났지만, 어둡고 아픈 곳이 있으면 또 가야지"

8시 :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2009년은 '배움'이다."


지난 1년간 넘어지고 쓰러지고 내팽개쳐진 이정희 의원은 한해가 저물면서도 또 다시 온몸을 던졌다. 추미애 의원과 한나라당이 합의한 노조법 개정안 통과에 이 의원은 몸을 던져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추한 날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 의원은 지난 30일 저녁부터 31일 아침까지 꼬박 국회 로텐더 홀을 지켰다. 이 의원 뒤에는 '민생 예산 발목 잡은 4대강 예산 전액 삭감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야3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의원들이 4대강 예산안 통과를 막기 위해, 순번을 짜 돌아가면서 로텐더 홀 오른쪽에서 농성을 했다.

아침 8시,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자 이 의원은 지친 몸을 이끌고 또다시 '전장'으로 나섰다.

이 의원은 쌍용차 사태가 올해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꼽았다. 이 의원은 "2009년은 이래저래 배운 게 많은 해였다"라며 한 해를 되돌아 봤다. 그런 그녀의 새해소망은 힘 기르기이다. 바로 진보진영의 근력을 키우는 게 소망이다. "지난 2년 동안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힘이 키워야 한다는 걸 가장 크게 깨달았다"라며 불끈 주먹을 쥐고 웃었다.





쌍용자동차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이정희 의원(왼쪽)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장을 지키는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오른쪽)

9시 : 김창호 시민주권 전략기획위원장, "2009년은 '생과 사의 해'이다."

김창호 위원장(전 국정홍보처장)은 참여정부 시절 함께 했던 주변사람 10여명과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불곡산을 등산 중이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김 위원장은 "2009년은 생과 사의 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의 충격이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두 분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열라는 과제를 줬다"라고 말했다. 그는 숙제를 풀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시민주권 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 활동도 참여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작은 실천인 셈이다.

10시 : 연기군민 강선호, "2009년은 '충청도민'이다."

충남 연기군 대평리에 18대를 이어 살아온 강선호씨(40)는 주민 3000명에게 보낼 연하장을 발송하기 위해 우편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하장에는 2009년 실의에 빠졌던 이웃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지난 11월 연기군청 앞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을 내걸고 밥을 굶었다. 꼬박 열하루를 굶고 나서 단식 투쟁을 끝냈다. 그는 "목숨을 건 투쟁보다는 건강한 몸으로 힘내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단식을 끝냈지만 천만은 그곳에 지금도 남아있다. 그 천막 안에는 2007년 후보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현지를 방문해 쓴 '모든 계획 차질 없이 진행되길 바랍니다'라는 글도 남아있다. '국민의 신의를 잃어서는 나라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의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논어 구절이 적힌 플래카드도 그곳에 있다.

강씨는 "세종시 건설은 충청도만의 일이 아니라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국가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백년대계이다. 새해에는 국민들에게 더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11시 : YTN 해직기자 출신 우장균 한국기자협회 회장, "2009년은 '사필귀정'이다."

우장균 신임 기자협회장(45)은 31일 오전 11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관악산을 올랐다. 산에 오르며 한 해를 정리하고 산을 내려오며 새해를 내다보기 위해서다. 그에게 2009년은 나쁘지만은 않은 해였다. 지난해 10월 7일 이후 1년을 넘게 해직기자로 살아오던 그는 지난 11월 13일 법원의 YTN의 부당징계 무효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2월 8일에는 제42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이 두 가지 변화를 근거로 그는 2009년을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해로 정의했다. 우 회장은 "법원판결과 기자협회장 선거결과를 보면서 '모든 일이 결국에는 올바른 길로 이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새해 1월1일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하는 우 회장은 "모든 기자들이 기자정신을 발휘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언론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라고 새해 포부를 밝혔다. 언론계 뿐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량을 갖춘 2010년이 되길 희망하기도 했다.





ⓒ시사IN 백승기 지난 2월 눈물의 졸업식을 치른 해직교사 최혜원,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팔당에서 여의도까지 도보 행진에 나선 임인환, YTN 해직기자로 기자협회장에 오른 우장균,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며 삭발한 강선호 청년부장(시계방향으로)


12시 : 해직교사 최혜원, "2009년은 '똥'이다."


'해직교사' 최혜원씨(26)는 2009년 12월 31일 오전 12시, 값진 선물을 받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해직 취소 청구 소송에서 최씨를 비롯한 해직교사 7명이 승소했다.

최씨는 "해직 취소 선고가 내려졌을 경우만 생각했다. 기자회견문도 승소일 경우만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직까지 가야할 길은 멀고 험하다. 서울시교육청이 항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씨는 거리의 교사에서 교실로 돌아갈 기대에 부풀어 있다. 물론 복직 이후 걱정도 많다. 일제고사 때문이다. 그녀는 "현실에 순응할 수는 없다. 올해 지나온 내 시간이 모두 헛된 시간이 된다. 그 때 일은 그 때 생각하겠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2010년은 '일제고사 없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랐다. 지난 한 해를 '더럽고 냄새나지만 다시 거름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최씨는 '똥'이라는 정의했다. 그녀는 '어릴 때 내 꿈은'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이런 구절이 있다며 들려줬다.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 위하여 거름되는 봄 흙이 고파.' 그녀는 "2010년에는 2009년의 '똥'을 거름 삼아 싹이 틀 것이다"라고 말했다. '천생 교사'인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다시 서게 될 교단에 놓여있다.

13시 : 팔당 농사꾼 임인환, "2009년은 '농사짓기 힘든 해'이다."

임인환씨(46)는 신품종 설향 딸기에 '자연스레' 생긴 잿빛곰팡이를 없애기 위해 밭을 솎았다. 가장 춥다는 영하의 찬바람도 그의 콧노래를 막지 못했다. 흙을 밟고 일할 때 그는 가장 즐겁다고 한다.

그는 지난 12월 흙 대신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향했다. 그를 비롯해 팔당 인근 하천 부지에서 유기농 경작을 해온 100여 가구가 4대강 정비사업 때문에 농지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임씨는 자신의 밥그릇이 빼기는 문제가 아니라 '농업과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분노했다. 그의 새해 소망은 앞으로도 딸기밭 체험을 온 어린이들이 "아저씨, 딸기 맛있어요!"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4시 : 이춘근 MBC PD, "2009년은 '빵꾸똥꾸'이다."


시트콤 < 지붕 뚫고 하이킥 > 이 뜨긴 떴나보다. 박용신 사무처장에 이어 이춘근 PD도 2009년을 '빵꾸똥꾸'로 정의했다. 12월31일 현재, 이 PD는 법적으로 형사 사건 피의자이다.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체포·압수수색·재판에 시달렸다. 지난해 2월에 결혼한 그에게 '달콤한 신혼생활'은 남의 집 얘기였다.

새해 1월20일이면 1심 선고공판이 난다. 잘 될 거라고 여기지만 '혹시나'하는 걱정도 한편으로 든다고 했다. 그는 "몰상식이 상식을 압도하는 사회분위기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지도 않을까 우려되지만, 법원이 상식적으로 판단해 줄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새해 소망도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2세를 가지는 것이다. 이 PD는 "태어날 아이가 행복한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w > 로 프로그램을 옮겨 4주마다 해외출장을 다니고 있는 그는 31일 오랜만에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오후 2시. 그는 종로와 명동 일대를 걸으며 '망중한'을 즐겼다.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선 PD수첩 이춘근 PD, 개원이래 처음으로 파업을 하고 직장폐쇄를 당한 노동연구원, 철도공사의 파업 유도 의혹이 불거진 철도노조 파업(왼쪽부터)

15시 :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조합 이상호 지부장, "2009년 '희로애락'이다."

이상호 지부장은 100일 만에 정상근무를 하고 있었다. 지난 30일 노동연구원쪽은 직장 폐쇄를 풀었다. 이렇게 개원 이래 첫 파업과 직장폐쇄를 당한 노동연구원은 박기성 원장이 물러나면서 정상화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부장의 시름은 깊다. 당장 누가 새 원장으로 오느냐가 관건이다. 예산도 줄었고 연구원을 없애겠다는 으름장도 있었다. 노사관계 선진화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선 그에게 2009년은 가장 힘든 해였지만, 반대로 노동이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온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또 파업을 이끌면서 조합원들이 보여준 끈끈한 애정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새해에도 지부장을 계속 맡는다. 원래 임기는 1년이지만, 조합원들은 그를 연임시켰다. 이 지부장은 "단체협약이 해지된 상태이니, 내년에는 단협을 체결 하는 게 시급하다. 노동연구원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16시 : 철도노조 백남희 선전국장, "2009년은 '황당한 해'이다."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 백남희 국장은 노조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철도노조의 입은 그는 여전히 바빴다. 철도노조 파업은 풀었지만 철도공사의 전방위 압박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에게 2009년은 '황당한 해'이다. 백 국장은 "임금과 단협 해지 때문에 법에 보장된 단체행동을 했는데, 정부에서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반대하는 파업이라고 덧칠하고 때려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발언 뒤 몰아친 검찰, 경찰, 공사의 압박을 보면서 또 한 번 황당했다고 했다.

최근 이정희 의원이 철도공사 내부 문건을 폭로하면서 철도공사의 파업 유도 의혹도 불거졌지만 공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대신 칼바람만 거셌다. 백 국장은 "지금까지 해고된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 칼바람이 불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사의 무더기 징계를 노조는 윗선 눈치 보기로 추정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압박한 형국에서 공사의 협상력 자체가 부정당했다고 보는 것이다.

철도노조는 1월7~8일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있다. 공사의 공세가 계속되면 또 다시 파업도 불사할 계획이이다. 백 국장은 "단협을 해지한 공사는 새 단협이 체결되지 않으면 무단협 상태가 되는 5월23일까지 시간을 끌 것이다. 이는 노조 말살책인데 당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라고 말했다.

17시 :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2009년은 '매일매일 황당한 날'이다."


백남희 국장에 이어 2009년을 황당한 해로 기억하는 사람이 또 있다. 윤주옥 사무처장은 멀쩡하던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걸 그냥 지켜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위기에 처한 지리산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가 흡족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2009년의 성과는 큰 의미를 가진다.

윤 사무처장은 31일 17시에도 지리산을 답사할 작정이다. 내년에 '지리산 만인보(萬人步)'라는, 1만 명의 사람들이 지리산을 걷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벌일 계획인데 이를 위해 지리산의 일부 구간을 답사하고 있었다. 지리산을 걸으며 한해를 마무리한 그녀는 "지리산이 가치를 인정받아 모두가 힘을 모으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라며 새해 소망을 밝혔다.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싸움을 벌인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사무처장,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시계방향으로)

18시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2009년은 '그들만의 천국'이다."

1991년 문을 연 민족문제연구소는 올해 18년간의 땀방울을 담아 결실을 맺었다. < 친일인명사전 > 의 발간이 이뤄졌다. 지금도 < 친일연구총서 > , < 풀어쓰는 친일인명사전 > 을 편찬하는 등 숨 돌릴 틈 없이 후속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역풍도 불었다. 발간 행사 때 행사 장소가 갑자기 취소되었듯 지난 30일에도 친일인명사전 발간기념 축하한마당 행사가 갑작스런 대관 불허로 연기됐다.

박한용 연구실장(49)은 "이번 대관 취소는 정부의 태도나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한다"며 정부에 대한 쓴 소리를 먼저 쏟아냈다. 그는 국민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4대강 사업,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 2009년을 '그들만의 천국'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내년이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해인만큼 국내외 전시회·한일 원로학자 학술대회·국치100년 주간 선포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박 실장은 "10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다음 세대로 넘겨야 하는 것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현실적인 실천을 담은 사업이 되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가족에 소홀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박 실장은 31일만큼은 일찍 집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저녁 6시를 보낼 계획이다.

19시 : 권영국 변호사, "2009년은 '가정맹어호'이다."

호랑이에 가족을 잃은 여자는 슬퍼하면서도 산골을 떠나지 못했다. 관리의 수탈이 두려웠던 탓인데, 이를 본 공자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며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말을 남겼다. 민변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에게 2009년은 '가정맹어호'였다. 용산참사, 쌍용차 사건, 노동법 개악까지 인권과 노동 현안의 중심에 있었던 그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31일 저녁에도 용산 참사 현장을 찾을 예정이다.

새해 1월1일 새벽에는 산에 오를 작정이다. 2010년에도 어려운 노동자들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그 나름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는 추미애 의원과 한나라당 합작한 노사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새해를 밝은 마음으로 맞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20시 : 평균 한국인 김하, "2009년은 '첫 단추'이다."





ⓒ전문수 김하씨는 20대 평균 한국인에 꼽혀 시사IN 창간 2주년호 표지에 실렸다.

대학생들에게 1월은 본격적인 방학의 시작이기도 하고, 토익 학원 특강 등 '스펙 쌓기'가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 시사IN > 이 선정한 대한민국 평균인 20대인 김하씨도 "청소년 수련관에서 봉사하고 있고, 토익 공부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 행복 점수를 100점 만점에서 90점으로 꼽을 만큼 현실에 만족해했다. 김씨는 "2009년은 첫 경험이 많았다. 시사IN 지면에도 나왔고, 봉사활동도 했고, 학교 행사 진행도 맡았다. 그래서 2009년은 내게 첫 단추를 끼는 한해였다"라고 말했다.

새해 김씨는 3학년이 된다. 보통 학생들은 휴학을 하는 시기이지만 그녀는 휴학하지 않고 토익 시험과 운전면허 시험까지 준비할 작정이다. "모든 성적이 잘 나왔으면 좋겠고, 남자친구 무사히 제대하고,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12월 31일 저녁 8시, 그녀는 가족과 연말을 보내기 위해 집이 있는 원주로 이동한다. "계획은 없는데 맛있는 거 먹을거라는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밝은 웃음이 묻어나왔다.

21시 : 최준영 경희대학교 실천인문학센터 운영위원, "2009년은 '빅이슈'이다."

31일 밤 9시, 최준영씨는 올 한 해 동안 자신의 작문 및 문학 수업을 들었던 노숙인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일 작정이다. 노숙인 자활을 돕고 '희망의 인문학'을 전파하고 있는 그는 올 한해 가장 아쉬운 일로 < 빅이슈 > 창간 연기를 꼽았다. < 빅이슈 > 는 1991년 영국에서 시작된 대중문화 주간지로 노숙인이 길거리에서 직접 팔고 돈을 번다. 최씨는 한국판 < 빅이슈 > 창간을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재정적인 이유로 무기한 미뤄졌다. 노숙인과 함께 공부해서 자신이 더 즐거웠다는 그는 2010년 새해는 "세상이 약자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주고,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빅이슈 > 창간에도 더욱 힘을 쏟겠다고 덧붙였다.

22시 : 이미숙 엘카 코리아 노조위원장, "2009년은 '지독한 투쟁'의 해이다."

화장품 업계 엘카 코리아 노조위원장인 이미숙씨는 새해에도 잠을 허하라는 운동을 계속 벌일 작정이다. 지난 한해 그녀는 지독한 투쟁의 해로 기억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대형마트를 돌며 '영업 시간 제한'과 '정기 휴점제'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밤 8시에 문 닫는 백화점은 7시30분, 자정에 문 닫는 대형마트는 밤 10시 정도로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주 1회 정기 휴점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캠페인은 결실을 맺기도 했다.

이씨는 "1월 1일 영업하겠다는 백화점에 대응해 대부분의 휴무를 보장받았다"라고 말했다. 12월 31일 목요일 오전 9시. 그녀는 1월1일 영업을 하겠다는 서울 용산에 있는 아이파크몰에서 23차 선전전을 했다. 이씨는 31일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 작정이다. 1월1일 경기도 하남 검단산에 올라 가족들과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이다.





ⓒ시사IN 윤무영 노숙자 잡지 빅이슈 창간하는 최진영씨,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 이정아 위원장,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이종란 노무사(왼쪽부터)

23시 : 이정아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장, "2009년은 '삶'이다."


TV에서만 보던 파업. 남편이 직접 당사자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정아씨는 "돌이켜 보면 끔직하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덕분에 이씨는 세상을 알았다고 했다.

남편 고동민씨는 수원구치소에 수감 돼 있다.
쌍용차 파업 당시 이씨의 배 속에 있던 셋째 가온이가 지난 10월 세상에 나왔지만, 남편은 아직 안아보지 못했다. 12월28일 이정아씨는 셋째 가온이와 함께 남편 면회를 다녀왔다. 가온이는 아빠가 눈앞에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면회시간은 10분. 이씨는 "남편한테 가온이 눈 떠서 노는 모습을 좀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요즘 이씨는 금속노조에서 '구속자 가족 지원비'로 나오는 140만원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첫째 내린이(6)와 둘째 든(4)이는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다. 유치원에 보내기에 생활비가 빠듯하기도 하지만 파업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이 엄마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밤 11시. 세 아이를 모두 재운 이정아씨는 구치소에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새해소망은 남편이 돌아와 가온이를 안아 보는 것이다.

24시 :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2009년은 '몸부림'이다."

12월30일 저녁 이종란씨(34)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범죄자 이건희는 사면하고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 파헤친 활동가는 체포하는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란 문구가 적힌 피켓도 들었다. 이씨는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반도체를 만들다가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수원역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도 참여한다.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민주노총 수원지부 사무실에 마련된 송년회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씨는 "6월엔 촛불시위라도 있었지만 올해는 잔인한 일들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쌍용자동차 사태처럼 '빵꾸똥꾸'같은 소식이 많았던 2009년은 '반올림'에게도 잔인한 해였다는 것이다. 삼성 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5명이 산업재해 불승인 판정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심사청구를 제기했지만 결과는 패소했다.

"2009년은 몸부림이었어요." 작년 한 해를 한 마디로 어떻게 정의할까 고심하던 이씨를 도와 동료들이 대신 대답했다. '반올림'에서 함께 일하는 정애정씨(32)와 공유정옥씨(34)는 "살기 위해, 싸우기 위해, 알리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사면되던 지난 29일 이씨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자진 출석을 약속했지만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그녀를 붙잡았다. 48시간 경찰서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려던 이씨는 '예상과 달리' 당일 저녁 풀려났다. 그녀의 새해 소망은 행정소송에서 산재를 인정받아 노동자의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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