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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LPGA 최고 선수 신지애의 현지 생활 뒷얘기

누세리티 2009. 9. 25. 18:04
세계 여자골프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미LPGA 최고의 선수'는 직접 만나보면 훨씬 더 매력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인터뷰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이날도 그랬다.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미LPGA투어에서 올해의 선수, 상금, 다승, 신인에서 모두 1위로 올라선 신지애(21)는 인터뷰하는 재미가 넘치는 선수다. 지난 14일(한국시간) P & G뷰티 NW아칸소챔피언십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으로 시즌 3승을 달성한 후 삼성월드챔피언십을 위해 샌디에이고로 바로 날아온 신지애를 < 일요신문 > 이 토리파인즈 골프장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사실상 세계 최고의 여자골퍼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미국생활의 뒷얘기를 재미나게 들어보자.
―연세대 재학생인데 학업은 어떻게 하나(나름 신선한 질문을 하려고 고심 끝에 골프 외의 질문을 먼저 택했다)?

▲잘 아시면서 왜 처음부터 식상한 질문을 하세요(한방 먹었다)? 리포트, 인터넷 강의로 대신하고 있어요. 나름대로 충실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아 참, 한국에 있는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다른 선수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유독 연세대는 골프선수라고 봐주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정말이지 이러다가 4년 내에 졸업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다시 한 번 신선한 질문을 찾아)지난 번 한국에서 인터뷰 때 스피드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속도를 내기 좋은데 운전은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 면허증은 취득했나?

▲(아주 신이 난 듯) 저 지난 5월에 조지아주에서 면허증 땄어요. 이제 미국에서 국내선 탈 때 여권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돼요(함박웃음, 작은 눈이 아예 없어졌다). 그리고 면허 딸 때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여기 캘리포니아처럼 조지아주도 필기시험을 한국어로 치를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뭐 잘못 체크를 했는지 처음에 컴퓨터 화면에 영어로 나오더라고요. 안내만 영어로 나오는 줄 알고 그냥 시험을 쳤는데 끝까지 영어더라고요. 결국 한국어 대신 영어로 필기시험을 치렀고 다행히 붙었어요.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렸지만 말이에요(손가락 V).

―(좋은 질문 덕에 분위기 좋아졌다!) 그럼, 직접 운전하고 다니나? 팬 카페에 나온 사진을 보니까 한국 미니밴을 타고 다니는 것 같은데.

▲아니요, 저 아직 차 없어요. 그거 렌터카예요. 운전은 국제면허증을 가진 아빠가 주로 하세요. (잠시 부친 신재섭씨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그리고 솔직히 저 120(약 193km)마일까지 밟아 본 적 있어요.

애틀랜타에 집을 샀다고 들었다. 애틀랜타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아직 계약은 마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음에 둔 집이 있어서 내년부터는 애틀랜타 집을 거점으로 투어생활을 할 거예요. 원래 한국 용인에 있는 집도 제가 구했어요. (옆에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빠 맞죠? 이유는 딱히 말할 수 없는데 분위기 등 모든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투어가 동부쪽에 많으니까 애틀랜타는 이동에도 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신지애 선수가 1978년 낸시 로페스 이후 처음으로 신인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하느냐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스스로 어떤 느낌이 드는가?

▲지금 제가 올해의 선수, 상금 등에서 1위에 올라 있지만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잖아요. 세계 최고의 선수, 이런 타이틀은 아직 부담이 돼요. 단 남은 미LPGA 대회를 모두 출전할 생각이에요. 크리스티 커, 로레나 오초아 등 경쟁 상대가 많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해요. 참 낸시 로페스는 3~4번 만났어요. 루키 오리엔테이션이랑 루키 아우어(미LPGA투어에서 신인들은 의무적으로 봉사시간을 가져야 한다) 등에서 만났는데 제게 아주 잘해주세요. 골프 참 잘 친다고 하고,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도 하고 다정하게 격려를 많이 해줘요. 다시 만나면 78년 낸시 로페스가 낸 기록에 대해 얘기를 나눠봐야겠어요.

―올해가 첫 시즌인데 미LPGA투어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당연히 체력이요. 하도 말을 듣고 그래서 힘들 걸로 예상을 했지만 직접 생활해보니 이동도 장난이 아니에요. 참, 세이프웨이클래식 대회 때 벌에 쏘인 건 정말 힘들었어요. 3라운드 2번 홀에서 왼쪽 옆구리를 벌에 쏘였는데, 10번 홀에서 그 조금 위를 또 쏘였지 뭐예요. 아마 제가 그날 노란색 옷을 입은 것 같은데 벌들이 노란색을 좋아해서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닌 것 같아요.

―얼마 전 양용은 프로가 미PGA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메이저챔피언이 될 때 흰 옷을 입어 화제가 됐다. 타이거 우즈나 양용은 프로처럼 마지막 라운드에 특정 색깔의 옷을 입을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단호하게) 싫어요. 일부러 징크스를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보라색 상의를 입으면 성적이 나빠 고민했는데, 그나마 아칸소대회에서 우승할 때 보라색 옷 입고 역전 우승했으니 이제 이 징크스도 털어버렸네요.

―영어는 많이 늘었나?
▲물론 아직 잘 못해요. LPGA사무국에서 외국선수들을 위해 영어레슨을 하는데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영어인터뷰를 아주 잘해 눈길을 끌었는데, 요즘 인터뷰는 어떻게 소화하고 있나.

▲아직 너무 어려워요. 맞아요. 이번 아칸소대회 우승 후에 한 인터뷰는 정말 최악이었어요. 원래 3라운드까지 우승권에 있으면 전날 좀 준비를 하거든요. 이렇게 이렇게 말해야겠다고요. 그럼 어느 정도 잘할 수 있어요. 그런데 7타차 역전우승이 말해주듯 전혀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무 준비도 못하고 막 인터뷰를 하다 보니…, 쩝 고생 많이 했죠. 인터뷰 때문이라도 앞으로는 3라운드까지 잘 쳐야겠어요(웃음).

―다시 생활 얘기 좀 하자.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국에 있는데 연락은 자주 하나? 전교 1등으로 알려진 여동생이 고3 수험생으로 입시 준비가 한창일 텐데.

▲전화 많이 하죠. 여동생은 원래 무조건 고려대에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연세대를 다녀서 그런지 최근에는 고려대는 후보 목록에 없더라고요. 지금 수시 원서접수를 한창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서울대 포항공대 연세대 등에 지원했다고 해요.

―(부친 신재섭 씨에게) 아니, 아무리 세계 최고의 선수를 뒷바라지한다고 해도, 둘째딸에게 너무 소홀한 것 아닙니까?

▲원래 우리 집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해요. 잘 하겠죠.
―(계속 신 씨에게) 내년부터 애틀랜타에 집을 구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계속 이산가족입니까?

▲어차피 둘째딸은 한국에서 일단 대학을 마칠 계획입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입학하는 남동생만 미국으로 데려올 계획이에요. 가족들이 미국으로 오니, 이제 오히려 둘째애가 혼자 유학하는 셈이죠.

―(다시 신지애에게) 혼자 다닐 때도 있지만 주로 아버지랑 다닌다. 이번에도 6주 연속 아버지랑 투어를 뛰는데 아버지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무엇인가?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생각 좀 하고 치라'고요. 가끔은 아주 미치겠어요. 전 생각이 너무 많아 고민인데….

―아직도 아버지가 엄한 편인가? 목사님이시고, 평소에 말씀도 별로 없으신 터라 잔소리는 잘 안 하실 것 같다.

▲모르셔서 그래요. 선수들에게 물어보세요. 아주 유명해요, 우리 아빠 엄하기로. 선수들끼리 저녁약속 한번 잡으려면 꼭 물어들 봐요. 아빠에게 허락받았냐고요.

▲(이때 신 씨가) 제가 원래 생긴 게 좀 무섭게 보이나 봐요. 교회에 가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말해요. 요즘은 (신지애에게) 정말 무섭게 안하고 편하게 대하는데 그래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투어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힘들지 않나. 그런 점으로 인해 아버지한테 혼나기도 할 텐데.

▲아 맞아요. LGPA사무국에서 대회 때마다 화요일은 목사님을 불러 예배시간을 마련해요. 거기에 빠짐없이 나가고 있어요. 아빠는 오히려 몇 번 나오고 안 나와서 제가 함께 나가자고 권하는 걸요. 영어로 예배를 드리고, 예배 인도자를 비롯해 모두 여자뿐이니까 아빠가 쑥스러워하세요(지금은 사정상 목회를 담당하지 않고, 신학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신재섭 목사는 한 달 전 신앙서적 3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는 걸로 알고 있다. 지난번에 댄 브라운 소설에 심취했다며 꼭 읽어보라고 추천까지 했는데, 지금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책 얘기를 하면 신지애는 신이나 말을 많이 한다) 오두막이요? 모르세요. 윌리엄 폴 영이라는 사람이 쓴 소설이고,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고, 한국에서 화제인데, 뭐 좀 종교적인 얘기인데, 어떤 사람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데 그것이 …(너무 길어서 중략)… 전 지금 절반쯤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꼭 읽어보세요(다음에 인터뷰하려면 이거 읽어야 한다).

신나는 책 얘기와 함께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었다. 일부러 키가 커 보이게 하기 위해 앵글 각도를 아래에서 잡으니까 "아니에요, 위에서 찍어주세요. 그게 좋아요"라고 한다. 포즈는 특유의 천사표 웃음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 것. 이를 본 신재섭 씨가 한마디 한다. "식상하게 맨날 브이(V)가 뭐니? 이제는 랭킹 1위니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이렇게 해야지." 이에 신지애는 "아직요"라고 웃으면서 짧게 답했다. 그런데 조금 후 신지애가 자리를 뜨자마자 마침 호텔로비를 지나가던 미국사람이 신재섭 씨에 다가와 "저 선수 이름이 뭐냐? 일요일에 우승하는 걸 TV로 봤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지금 랭킹 1위인 그 '신인'가 하는 선수 아니냐?"고 물었다. 신재섭 씨는 "지애, 신"이라고 아주 또렷하게 답했다.

샌디에이고=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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