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실체
15 또결혼 대형면허와 특수트레일러 면허
누세리티
2012. 1. 19. 20:25
나는 열심하여 한달월급을받앗다 그래서 외상으로소개받은 곳에 소개비 입금시키고 쉬는날
서울로올라갔다 서초동 법원앞을뒤젓다 법무사사무실을 다니며 나의사정이야기하고 자문을구했다 법원도가서 상담을하였다 결론을 서류를 한번집어넣어서 결정이되면 10년동안 다시는 접수가 안된다는것이었다 그리고 파산하는거는 있는재산 다걸고 파산해서 한마디로 빚잔치하고
새로운 세상을사는거고 하나는 직장을가지고서 매월얼마씩갑는방법이다 물론 많이 감면해준다
나는 전자를땍했다 머리가복잡해서 한번에 해결하고싶었다 그리하여 법무사 한곳을택했다
상담을 몆군데하면서 실험을하였다 먼실험이냐면 난지금 돈이없으니 일하여벌어서 주겠다
분활로다 그동안 진행을해줘라 약1년걸리니 그안에 충분히 돈을버니까 걱정마라 하였더니
한군데서 오케이하였다 자신이있다는것이다 알아보니 이미 수업이 많은사람이 이곳을통하여
파산 하고 면책을받앗다 나는 선수금을주고 착수했다 은행 카드 보헙대출 사채 심지어 핸드폰
요금까지 다걸었다 그리고 집에가서 짐을꾸려서 다시내려왔다 돈이없으니 열심히일을하였다
돈쓸데가없어 월급받는데로 모였다 통장으로 정식으로 월급을받으면 파산이안되어
일용직으로 일을하였다 술 담배 다안하니 모일수밖에 그런데 아내가 어찌알고 가끔찿아왔다
서로 회포를풀고 다시가곤하였다 오지말라고해도 가끔내려왔다 그러다가 시간은가고 재판날이왔다
서초동 법원을가서 사실데로 이야기하고 도와주시면 이제는 열심히살겠읍니다 지금 술 담배
도박 일체안하고 일용직 열심히하고있읍니다 하며 선처를부탁하였다 드디어 파산 선고를받고
다시 면책접수를하였다 면책은 이사람이 정식으로 법원에서 파산하였으니 빚받을사람은
미안하지만 포기하라는 선고이다 결국 300만원을주고 마무리했다 2006년이라 그때는 비용이비쌋다 지금은 싼데 내생각은 얼른홀가분해지고 또 언제 정권이 바뀌어 파산제도가 없어질까바
서둘러서 처리한것이다 목장일도 그럭저럭 익수해젔다 거기는 33년 30년 근무한분들이다
30년근무한분이 수송부 반장님이었는데 한날은 회식날 김기사 고마워 네왜요?
처음 몆일은 헤메더니 금방터득하여 김기사목을 120%는했어 잘해 음 감사합니다
그게 그럴만하다 왜냐면 기사한분이 팔을다처서 몆달 병원에 누워있었다 봄에 옥수수심고
초지밭에 풀이자라면 그때부터 3번을 풀베기작업을한다 여름에한참일할시간에
한분이 빠저서 나없었으면 농사를 망칠뻔한것이다 머내가잘했다는게 아니라
내월급 과 경력으로는 120%일을했다는것이다 나는 그해 그러니까 3월달에 내려가서
한해농사짖고 올라왔다 왜냐면 농장에 구조조종이있었다 나는 목장장님한테 자청하여
제가그만두겠읍니다 하였다 물론 반장님은 다른사람다가도 김기사는 나랑갔이하자고 하였으나
제일 막내인 나고 나는 어디가든 무슨일이든 할수가있지만 다른사람은 목장에서
청춘을받친 분들이라 당연한일이었다 마침 나는 법원일도 마무리되고 소송비용도
다마무리하고 하여 홀가분하게 올라왔다 무엇을할까하다가 0.5톤 대우에서나온 라보 라고하는
차를사서 퀵써비스 하면 돈이벌린다하여 준비를하였다 그리고 서울에 임대주택 아파트는
아내와 쌍둥이아이들이 사용해왔는데 내가이야기했다 나는 당신만나서 돈다까먹고
보험도 많이남은게 1년인데 8개가 다날라가고 빚이1억넘어 파산까지하였다
그러니 이집을청산하여 서로살길을찿아보자 같이살고싶지안다 나는 작은차를사서
살아갈테니 당신은 알아서가라 이집은 정리해서 나누자 결국 내가더 많이가지긴했으나
조금나누어주고 정리를하였다 나는 돈이없어 여관에 장기세를얻어 생활하며 용달일을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차가작아 유지지도안들고 통행료도 반갑이고 1톤들은 죽을맛인데
라보는 개안았다 그런데 경기가점점 나빠젔다 일도줄었다 왜냐면 기계 섬유 같은 업종은
사라지고 반도체갔은 기업은 번창하니 그럴수박에 점점 벌이가 시원찬아서 차를팔고 오토바이를 다시삿다 오토바이는 좀 개안앗다 그러나 팔이 금가고 갈비도나가고 하다보니 오토바이타다가 내명에 못죽겠군아 또 다친곳도 한참걸리고 하여 오토바이도 팔아버렸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담배 술 도박은 끈어도 개안은데 여자를 끈으니 몸이아팟다 조물주가 그리만들었나보다
그래서 몸도쉴겸하여 결혼소개소를 갔다 날을잡고 중국을가기로하였다 왜냐면
한국여자는 실었다 나라에서 여자를너무키웠다 암닭이울면 집안이망한다고하였다
나는 더군다나 보수적이라서 드센여자는 질색이다 70년대만해도 개안았다 그이후
여성상위시대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기울기시작하여 지금도이모양이다 여자가드세저서
이모양이라생각한다 여자가 여자다워야지 결혼도하고 아이도낳고 좋은엄마도되지
이리드세저서 툭하면 안산다 혼자산다 기고만장이다 이래서는 나라가안된다
그래서나는 조선족도아닌 오리지날 한족을 아내로맞이하였다 76년생 나와 15년차이다
처음 보니똘방똘방하였다 문제는 말이안통한다는건데 중국에서 몆일지내보니
손짖몸짖발짖하여 다통하였다 그래서 한국에돌아와 수속을발아 결혼을하였다 그런데
소개소에서 돈이 3.000만원있어야 된다고하여 100만원에 15만원 방을 3천만원짜리 전세로
서문서 위조를하여 신청하였다 덕분에 결혼은하였으나 초청비자신청이 불허되었다
그러나 내가누구인가 중국에서는 빨리데려가라고하고 불허는떨어젓고 미칠지경
할수없이 구구절절 신청서를 다시작성하여 소개소없이 혼자신청하였다 그결과
허가되었다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놀래였다 소개소에서 물었다 불허되면 안나오는데
어떻게 비자를 받앗냐고 그래서 담당자붙잡고 울었다고하였다 사실비슷했다 왜 결혼해야하고
처음에 몰라서 서문서위조하여 불허되고 또 서류도 철저히 준비하였다 중국갈때 내가만든
다음 카페주소를 주고서 컴퓨터도 못하는사람을 데리고가서 말도안통하는데 피씨방가서
가르처주엇다 이주소로들어가서 이곳에다 편지를써라 그럼내가보고 여기다 답장하마
전화로는 말이안통하니 인사나하고 여기에 편지로 주고받으면 돈도안들고 좋다고
출임국에 그런편지내용 전화통화내역서 등 최대한 준비하여 사실데로 이야기하고
매달렸다 그결과 된것이었다 결국 이렇게하여 3번째결혼을하였고 아내도 한국에들어왔다
컴을이야기해보자 사실 영어알파벳도 지금도모른다 약간은안다 왜냐면 양식조리사딸때 영어
알파벳공부도 같이했기때문에 그런데 쌍둥이하고살때 컴이고장났는데 수리를왔다
다수리한뒤 나보고 해보라는것이다 못한다고 말은못하고 어떻게하는데요?했더니
이렇게 해서 이렇게요 아하 예 해볼께요 바쁜데가보셔요 그게다다 그때부터 컴을하였다
처음에는 고스톺 같은걸하다가 어느날 첫팅방을갔더니 마구 그림도올리고 사진도올리고
하는것이다 나는 글씨도 더듬더듬 독수리타법으로 한참씩 걸려쓰는데 물어보니 잘안가르처주길래그때부터 인터넷을 뒤저서 배웠다 독학으로 터득한뒤 거길다시가서 나도 보란듯이 올렸다
그게 테그라는것도 배웠다 그런데 신기하게 방송도하고 이사람 저사람이 돌아가며 은악도틀고
사람과 대화도하고 하여 부러워서 가르처달라하니 어려워서 안된다하여 또 독학을시작하였다
결국배워서 실험방송을하고 내친김에 카페도 만들었다 나도 방송국장이되어 회원모집하고
방송하는것도 가르처주어 돌아가며 방송도하였다 그러다가 전국띠모임도 만들었다 소띠모임
여기저기 카페가있고 회원들도 늘어나고 하다보니 정신이없는거다 그리고 정모니 번개니
이건 장난이아니었다 생활이 여유가있으면 참좋으련만 나는 가난뱅이라 어느날
카페도 넘기고 페세하고 정리을하였다 그리고 하게된게 올라인게임이다
칼올라인 알에프 실크로드 리니지2 등등하다가 지금은 십이지천2 이게임만한다 1성부터
키워서 12경까지 키웠다 그래서 컴을조금했기때문에 말안통하는 중국사람에게
카페를만들어 주소를 주고온것이다 중국에서 결혼하며 찍은사진도 올리고하여 보라고하니
좋아하였다 아무든 우리는 둘이서 신혼살림을하기시작하였다 아내는 열심히 한국어를배우고
제미있게 살아간다 아이를 원하기에 내나이도있고 돈도없어 아이는낳지말라고 이야기했다
중국에서 결혼하고 돌아와 몸도좋아저서 무었을할까 망설이고있는데 신문에서 기사를보앗다
지금 2층버스를 들여와 서울에서 투어버스로 사용하고 서울시에서 점차적으로 굴절버스와
2층버스를 들여와 운행한다는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아보앗다 2층버스할려면 조건이
무엇이냐하니 대형면허와 특수트레일러 면허라하였다 그래서 서울서따면 비싸길래
안산학원에서 접수를하였다 오전에는 대형 오후에는 추레라 두가지를 다배웠다
대행이 대형은붙고 트레일러는 떨어젔다 왜냐면 사실 대형보다 추레라가더쉬웠고
자신있었다 그런데 시험당일날 하필이면 기준을잡는 타이어가 펑크난것이다
학원에서 배우기를 타이어 모소리 와 뒤기둥을 기준잡아 가르첫기에 그대로 배운건데
그타이어가 펑크라서 기준을세밀히 못주는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물먹고 나는따젓다
학원에다가 기준을주고 가르친타이어가 펑크라서 떨어젓다고 그러나 한번떨어진걸
이미업질러진일 나는 그냥 안산면허시험장에 접수하고 시험당일날 혼자가서 붙었다
차가달라 힘들었지만 목장에서 트렉터하던 실력으로 붙었다 그리고는 경력을
쌋기위하여 강서구 화곡동에 3번 마을버스를 들어갔다 버스는 바로못하기때문이다
그런데 마을버스가 과관이었다 사람취급을 안하는것이었다 손님도 회사도
회사는 마을버스를 걷처야 시내버스를 한다는 약점이있기때문에 나이도 소용없고
욕으로시작해서 욕으로끝나고 하기실으면 가라는것이었다 지금은 마을버스가 많이생겼다
그때만해도 드물었다 초보자도 안쓴다 그야말로 버스하기워하여 갇은욕과 언행 차수리도
우리가해야한다 그것도 새벽에나와 오후 1시정도 교대해주고 그때부터 피곤한몸으로
장갑끼고 수리해야한다 어떤때는 밤까지한다 그리고 가서씻고 새벽에 일어나 정검하고
6시첫차 운행한다 손님은 손님데로 시내버스 아니고 마을버스라 업신여기었다
그리고 산비탈 다닐려니 위험하여 사고도 많이난다 내가근무하는곳에서 한분은
월급이없을정도다 사고처리하고 그걸 가불처리해서 사고가나면 합으를한다 사고당사자
하고는 당연히하고 회사와도한다 아니면 사표쓰고 가야한다 그런행포라니 한번은
기가막히는일이 벌어젔다 연말연시 인데 막년회를한다하여 두고보니 기사들이 돈을걷어
부장 과장 들회식을 시켜준단다 그것도 노래방에 여자까지 붙여주고 우리는 옆에서
흥만독구어주고 이런개같은 그때 서울시에서 버스기사대우를해주어서 기사자리 들어갈려면
웃돈을주고 줄서야했다 그런시절이라 마을버스에서 사고라든가 회사에서 부적절한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경력이있어도 버스회사에 못들어간다 이런약점을노려 그런횡포를하는것이었다
나는 성질이 질알같아 그런꼴을 못보기때문에 대들다가 찍혀서 더곤욕스러웠다 그리고
벼르고있었다 마치 너이놈 사고만나바라 제발좀 사고내라 이러는것이었다 그러나 내가누구냐
그산비탈에서 트렉터로 갈고닫은 운전인데 나는 콘노래를불럿다 왜냐면 산에서 트렉터로
일하면 비탈이라서 악셀을 자동으로놓고 한쪽바뀌가 들리면 그쪽가서 몸으로 눌러가며
일했다 트렉터 구르면 끝이었다 초지밭이 커서 끝이 가물거리는 비탈인데 굴럿다함
뼈도못추리니까 그런실력인데 사고가나나 흠 그러나 허구헌날 일끝나고 차수리하는데
밥을 우리가 돈걷어 시장바다 부장 과장 밥해주는게 정말실었다 그래서 6개월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개같은경우가 어디있나 월금 120만원인가 사고자주나는 사람은
주기적으로 노래방대접을해줘야한다 나는 그나마 무사고라 월급타고있었다
겨울인데 산기슬이라 눈이와도 구청에서 제설작업을 못한데 큰길하기때문에 우리는
염화칼쉼 자가용에 실고 대기를한다 새벽에 일어나 일할사람을 12시까지도 붙잡아둔다
이게 공산국가도아니고 니기미 2층버스한번할려다가 애새끼 성질더버릴것같아 더있다가는
살인을할것같은 조짐이보였다 그정도라 결국그만두었다 그때 이유도있었다 결혼정보사
사장이 시내버스 배차과장일을 보다가 퇴직했다고 아는후배들이 많으니 자기가 넣어준다고
큰소리치기에 밥사주면서 졸라서 서류주고 기다려도 계속미루기만하기에 싸우고 다시
강서6번 마을버스로갔다 왜냐면 강서 3번은 차가작다 콤비 같은 작은차라 시내버스할려면
더큰차를 해바야하기에 대우090 차를 몰아볼려고 갔다 멀어서 새벽에 출퇴근할려면 힘들어서
자가용도 한대사고 열심히하는데 처음하는곳보다 조금나앗지만 거기도 사람취급은 안해주었다
다행히 사장님이나 부장님은 좋은분이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과장한테 찍혀서 더러웠다
과장하고 한팀이라 빼도박도못하고 결국 두달하고 고만두었다 왜냐면 서울에서 2층버스 들오온다는 소식이없는거다 거기다가 시내버스 들어가긴 점점힘들고 나이는 점점먹고 정년이 55살인데 이거 고생만하고 2층버스는커녕 시내버스도 힘드니 사람대접 못받아가며 이런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내가불쌍했다 그래서 더러워서 버스안한다고 고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