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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메모리 분야 최고 엔지니어의 안타까운 죽음

[오마이뉴스 김종철 기자]
"(국내) 반도체 메모리 공정혁신 기술에선 최고의 엔지니어였지요."
27일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26일 오전 이 회사 이아무개 부사장(51)은 자신이 살고 있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아파트 앞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를 처음 발견한 아파트 경비원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현재 경찰에서는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씨가 스스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근거는 사고 당시 주변 상황과 함께, 이씨가 평소 회사의 업무 부담으로 우울증을 앓았고 '살기 힘들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점 등이다.

이씨의 사고소식이 전해지자, 삼성 직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씨와 함께 근무해온 삼성 반도체 부문 쪽 사람들은 "안타깝다"는 말 이외에 다른 언급을 꺼렸다. 특히 삼성그룹 안에서도 최고의 엔지니어로 인정받아온 핵심 인재였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직원들에겐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국내 최고의 반도체 기술 전문가의 죽음... 왜?





서울 서초동 강남역 인근 삼성타운의 모습. 32·35·43층의 최첨단 인텔리전스 빌딩 3개 동으로 이뤄진 삼성타운에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이 입주해 있고, 상주 인구만 1만 명이 넘는다.

ⓒ 선대식


왜 그랬을까.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이씨는 국내 반도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소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소자는, 쉽게 말하면 널리 사용되는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반드시 들어가는 메모리 제품으로 이해하면 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제품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집적도를 매년 2배 이상 늘려가면서 이른바 '황(황창규 전 사장)의 법칙'을 구현해오기도 했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후 일본 NTT에서 근무했다. 1992년 삼성전자에 발을 들여놓은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 기술 혁신에서 최고의 엔지니어로 평가받아왔다.

그는 특히 지난 2008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메모리 기술의 도전'이라는 주제의 연설을 통해 "작고 빠르면서도 성능 좋은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메모리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이씨는 메모리 집적 기술의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이어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맞춰나가기 위해서는 반도체 소자와 3차원적층, 멀티레벨셀(MLC)을 접목시키는 등의 기술 개발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씨는 지난 1998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이사로 승진한 이후,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과 디바이스솔루션총괄 상무로 올라섰다. 이후 삼성 엔지니어 중 가장 탁월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삼성 펠로우'에 선임됐다. '삼성 펠로우'에 선임되면, 개인 단독 연구실을 제공받는 것과 함께 연간 10억 원 규모의 연구비 지원을 별도로 받는다.

작년 말 인사이동 후 업무에 큰 부담 느낀 듯... 충격의 삼성 직원들 "안타깝다"

국내 반도체 메모리 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던 이 부사장은 작년 말 인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았다. 그동안 메모리 기술 연구 분야에 집중했던 이씨는 이때 메모리 반도체 생산 쪽의 일을 맡게 됐다.

회사 일각에선 이 부사장이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분야와 다른 새로운 일을 맡아 업무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 이 부사장이 '회사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 살기 힘들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경찰 쪽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사장이 맡은 업무가 그동안 (이 부사장이) 전공으로 해왔던 분야와 다를 수도 있지만, 삼성 내부에서 차세대 경영자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부사장의 업무 역시 삼성전자 반도체 쪽에선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였고, 해당 분야에서 이론과 실력이 검증된 그에게 해당분야를 맡겼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씨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병원에는 회사 동료직원을 비롯해 사장단 등 임원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씨의 장례를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를 것이라고 회사 쪽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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